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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갤러리

군수님, 여기 좀 와보셔야 겠는데요~

정치인들은 늘 좋은 의도로 일을 시작한다(고 난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우지요. 여론에 얻어맞기 전까지는...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다운 계곡, 운일암반일암을 찾는 사람들에게 계곡을 따라 걷기 좋은 산책로를 만들어 준 건 참 잘한 일입니다. 박수~~~

여기까지만 보고 눈 딱 감고 집으로 왔으면 좋았을 걸 너무 자세히 본 제가 나쁜 놈입니다.

살짝 이상한 생각이 들었죠. 여기가 산책로가 시작되는 곳인데... 입구가 어디야? 어디로 들어가능겨?

옆으로 돌아가는 건가? 가보자~

그래서 입구를 찾아 옆을 살펴봤습니다. 뭐야? 어디로 들어가라는 거야? 휠체어나 자전거는커녕 사람도 들어가기가 힘들겠는데? 

일부러 이렇게 한 건가? 위험하니까 이 길로 다니지 말라고?

나중에 저 어마무시한 표지석을 치우면 될 거라 생각하지 마시라. 

제가 배리어프리(장애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 반 전문가인데, 저 표지석을 치우더라도 바로 옆이 차도라 경사로를 낼 공간이 안 나온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와 봤습니다. 여기는 아예 길이 끊어졌네요. 나중에 연결하겠죠? 분명히 할 거라 믿어요~ 

안 그럼 미친 거지요.

여기는 좀 괜찮나 싶어 자세히 보니 역시나 턱이 있네요. 휠체어로는 도움 없이 못 올라갑니다.

정말 일부러 이렇게 한 건가? 공사 설계자와 시공자의 철학인가?

걷지 못하는 자들과 어설프게 걷는 자들은 이 길로 다니지 마시오~~~ 뭐 이런 건가?

아니면 경사로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든지.

설계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결정판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어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밀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쌍욕으로 마무리를 짓고 왔던 길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혹시 전동휠체어나 스쿠터를 타고 왔다면 X됐습니다. 데크 길의 폭이 좁아 회전이 안 됩니다.(전동휠체어의 회전 폭은 180cm 이상이어야 합니다.) '빠꾸'로 가셔야 합니다. 

저기 하늘에 걸린 구름다리를 보니 더 성질이 납니다. 내 세금도 저기 들어갔을 텐데... 난 평생 가보지도 못할텐데...

아! 까먹고 말씀을 안 드렸네요. 저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중증지체장애인입니다. 

다니는 길만 좋으면 장애인이라는 걸 잊고 사는데 이런 상황을 만나면 새록새록 실감이 납니다. 

생각 없이 막 돌아다니면 안된다는...


정리를 하자면, 천금 같은 세금을 군민을 위해 쓰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왕 쓸 거라면 제대로 써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돈을 생각 없이 막 쓰니까 욕을 먹는 거다. 이런 큰 공사에 앞서 전문가에게 한 마디만 물어봤어도 이런 일은 안 생겼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크다.


사진, 글 / 진안광장 이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