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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의 단상 / 소수를 위한 민주주의 - 공적 과제를 이익 집단과 야합을 통해 풀어가려는 국가-

소수를 위한 민주주의

공적 과제를 이익 집단과 야합을 통해 풀어가려는 국가


박태순 / 디지털 크리에이터 / 한국공론포럼 상임대표 



의료는 분명, 의료인이나 국민에게 안정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국가나 행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간호사, 환자, 의료업자, 다양한 의료서비스 종사자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건강에 관한 권리를 지니고, 보험료를 내는 국민 대부분이 잠재적 이해관계자이다.

현재의 위기로 국민 건강에 심각한 영향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의료인 증원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의사집단과 국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국민은 모든 논의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진행되고 있을까? 왜 논의에서 국민은 배제되고, 논의의 목적이 국민의 공공성 확보가 아니라, 의사 규모로 축소되어 버린 것일까?

참으로 길고 많은 얘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이 글에서는 한 가지만 지적하겠다. 현재의 논의는 의사집단과 정부 간 갈등처럼 보이지만, 문제의 공적 해결이란 차원에서 보면, 공적 문제의 사적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야합’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가 그 짓을 하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다양성과 차이를 넘어 개별화 개인화가 대세인 사회가 되면서, 소수의 집단이 응집하여 자신들의 개별 이익을 극대화하는 현상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개딸 현상으로, 사회에서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들의 '뗏법'이 대표적이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한 '개체'들은 공동체 문제에 관심 둘 여력이 없다. 국가적 행사라 할 투표도 겨우 하는 정도로 생활위기 생존 위기 속에 살아간다.

이렇게 원심력이 강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사회가 되면 될수록, 레비츠키가 tyranny of minority에서 설파한 것처럼 극단화된 소수의 목소리가 커지고, 과도한 요구를 하지만, 분자화·원자화된 사회가 이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국가 역시 사회가 분화하면 할수록 국민적 지지를 얻기는 어려워지고, 정책 집행의 명분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소수의 집단화된 사람들과 취약한 국가가 만나게 되면, 공정성, 정의, 형평성, 소수자 보호 같은 공공성 유지에 필요한 가치는 날아가고, 국가도 하나의 당사자가 되어, 소수의 이해집단과 ‘자원 배분을 둘러싼 협상’으로 문제를 종결지으려 한다.

한마디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공적 해법을 추구해야 할 공공의제가 국가라는 ‘관리집단’과 개별 이익을 추구하는 ‘소수의 극단화된 집단’ 간에 자원 배분, 즉 협상을 통한 해결로 축소되어 버리고 만다.

이렇게 공적 과제의 사적 해결이 가져오는 후폭풍은 심각하다. 협상에 참여한 집단은 과도한 이익을 얻게 되지만, 그 손실은 논의에서 배제된 일반 국민이 지게 되는 것이다.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자의 몫은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의사집단보다, 국가가 훨씬 문제다. 한번 뭉친 집단은 집단 이익 실현을 위해 내달리게 되어 있다. 그 안에 개별적인 차이 같은 건 중시하지 않게 된다. 물방울이 모여 거대한 홍수가 되듯이, 집단이 되면, 사람은 사라지고 물화된 힘만 존재하게 된다. 지금 그들의 모습이 그렇다. 집단의 속성이다.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들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국가는 존재 이유가 공적 문제 해결이다. 그런데도, 현재 국가는 공적 과제를 국민과 함께 풀어가기보다는, 소수화된 특별집단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들고 있다. 자신들이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공적 문제 해결에 대한 무능이 상황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다. 그나마 협상마저도 제대로 하질 못한다.

그러니 국민에게 국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