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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유학, 모두에게 좋은 것이 되려면 / 현병호(교육잡지 격월간 민들레 발행인)

농촌유학이 기후위기 교육?

 

일 년 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느닷없이 “초등학생들을 한 학기 정도 농산어촌 유학을 다녀오게 준의무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었다. 취지는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적 감수성을 기른다는 것이다. 

농촌유학은 도시 학생이 일정 기간 시골 학교에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도시아이들도 살리고 농촌도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농촌유학에 주목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희망하는 100여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오던 것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준의무화했으면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정책을 가볍게 입에 올림으로써 농촌유학이라는 좋은 정책마저 색안경을 쓰고 보게 만들었다. 

“흙을 밟게 한다는 발상은 좋지만, 아이들의 주거나 서울에 직장을 둔 부모들의 사정, 학습결손 등 걱정되는 게 한둘이 아닌데…” “정책 취지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정책이 시행되면 아이들이 평일에는 농산어촌 유학을 하고 주말에는 서울에 돌아와 학원 보충수업을 듣는 상황이 벌어지진 않을까 우려스럽다.” 현실적인 문제와 부작용에 대한 우려뿐만 아니라 “자기 애들은 특목고 보내고, 남의 애들은 시골 보내는 거냐” 같은 인신공격성 댓글도 달렸다. 

 

사실 농촌유학을 우리 사회에 처음 소개한 매체는 격월간 《민들레》다. 2005년, 일본의 산촌유학 현장을 돌아본 김일복 씨의 글을 게재한 후 교보교육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일본에 답사를 다녀와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하면서 국내에 다양한 현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50년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산촌유학이 활성화되었다가 잠시 주춤했는데, 후쿠시마 사태 이후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으로 도시의 학교들이 문을 닫으면서 농촌유학생이 반짝 늘어났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다. 

 

일본보다 산지가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공식 명칭을 ‘농산어촌유학’이라 쓰고 있는데, 줄여서 ‘농촌유학’이라 하기도 한다. 농림부와 지자체들이 농촌 살리기 차원에서 지원을 하면서 현장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30여 곳이 되지 않는다. 이를 확대 시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도시 아이들에게도 시골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농촌유학은 도시 교육청의 의욕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을 받아줄 수 있는 시골 학교와 마을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설령 많은 현장이 준비된다고 하더라도 농촌에서 한 학기를 지내는 것이 도시 아이들에게 반드시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는 보장은 없다. 잠시 다녀가는 도시 아이들로 인해 농촌 아이들이 받게 될 부정적인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면서 혁신 교육이 빛을 잃어가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의 실패다. 행정의 실패가 교육의 실패로 오인되게 만들면 교육정책이 좌초하게 된다. 농산어촌유학 또한 농촌을 살리고 아이들을 살리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있지만 도시 교육청이 나서서 밀어붙인다고 될 일은 아니다. 지역 교육청과 협의해 현지 학교 교사들과 마을 사람들이 준비할 수 있게 돕는 일이 먼저다. 도시의 아이들도 농촌에서 살아보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준의무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이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좋은 것도 강제하면 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농촌에서 몇 달 지내면 생태적 감수성이 길러질 거라는 생각은 전형적인 교육 공학적 발상이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모두가 생태적 감수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 교육은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더 잘할 수도 있다. 물난리 난 곳이야말로 기후교육 현장이다. 수해 현장에 가서 일하는 척하며 “사진 잘 나오게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정신 나간 국회의원 하나도 제명하지 못하는 나라다. 진정으로 생태적 감수성을 기르고자 한다면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전북 지역 농촌유학 현황

 

조희연 교육감이 농촌유학을 확대하자고 말하게 된 배경에는 그동안 농촌유학을 경험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좋은 반응이 한몫했을 것이다. 인구가 줄어 걱정인 지역에서도 농촌유학생들로 인해 지역 인구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어 적극적인 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21년부터 전남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100명의 학생이 농촌유학을 경험할 수 있게 지원해왔다. 2022년에는 전북교육청과도 협약을 맺고 지원을 하고 있다. 농촌유학생의 거주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해당 지역 농가에서 농가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홈스테이형’, 가족과 함께 이주해 생활하는 ‘가족체류형’, 보호자 역할을 하는 활동가와 함께 유학센터에서 생활하는 ‘센터형’이 있다. ‘가족체류형’의 경우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농가에서 생활하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이 지원하는 농촌유학은 매년 3월 1일 시작되는데, 학기 단위로 운영되고 희망자의 경우 연장이 가능하다. 총 유학 기간은 초등학생은 6학년 졸업 시까지, 중학생은 2학년까지로 제한한다. 학적은 전학으로 처리된다. 학생의 주소지를 농가 또는 유학센터로 이전해 전학 절차를 밟게 되며, 이후 지역 관내 학교 소속 학생으로 편성되어 지원을 받는다. 농촌유학이 끝나면 원적교로 복귀하게 된다. 

 

전북 지역의 농촌유학생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지난해 농촌유학생 27명 중 25명이 연장신청을 했고, 전북교육청과 서울교육청의 지원에 힘입어 2023년에는 84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지난해 완주, 임실, 순창, 진안 4개 지역에서 올해는 8개 지역(고창, 김제, 장수, 정읍)으로, 협력 학교도 6개교에서 18개교로 늘었다. 유형별로는 가족체류형이 37가구(66명), 유학센터에 묵는 학생이 18명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75명, 그 외 경기, 인천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9명이다. 

전북은 「전라북도 농산어촌 농촌유학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농촌유학을 활성화하기 위해 협의회를 발족시키고 약 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올 1학기부터 초등 1학년부터 중2 대상의 가족체류형, 초등 4학년부터 중2 대상의 홈스테이형과 유학센터형 농촌유학을 진행하고 있다. 유학생들은 전북교육청과 서울교육청으로부터 체류비와 초기 정착금 등을 지원받는다. 전북 지역의 경우 지역별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으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데, 조림초의 경우 진안고원 치유숲과 연계해 아토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정읍 이평초는 동학농민혁명과 연계한 마을교육과정을, 임실 지사초는 치즈테마파크와 연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농촌유학은 도시 아이들뿐만 아니라 농촌 아이들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학생 수가 줄면서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의 경우 유학생들이 늘면서 학교에 활기가 돌아 교사들도 의욕이 생긴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보러 도시 부모들이 왕래를 하게 되고, 가족체류형이 늘면서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농촌유학은 지역민이나 귀농 또는 귀촌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일감이자 경제적인 방편도 된다. 유학생 아이들을 돌보면서 동네 아이들을 함께 보살피는 일은 사회적 부모 역할에 다름 아니다. 아이들을 살리고 지역도 살리고 학교도 살리는 일이다. 지자체와 마을, 지역 학교가 협력하여 농촌유학의 좋은 모델을 늘여가 보자. 


글 / 현병호(교육잡지 격월간 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