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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행복한 세상 ㅡ 김종철 선생님 3주기 추모 미사에 부치는 글

김종철 선생님 3주기 추모 미사를 앞두고 많이 묵상하게 됩니다. 김종철 선생님 사상과 삶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운명, 아니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숙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절정의 40대 젊음을 농촌의 희망, 농민과 유기농업, 생태와 자급자족 공동체에 바쳤기 때문입니다.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제 젊음, 제 목숨을 걸고 김종철 선생님의 사상과 삶을 살려고 10년 동안 산골짜기에서 발버둥 쳤습니다. 요즘 선생님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풀꽃

너도 꽃/ 나도 꽃/ 홀로 피면 외롭지만/ 함께 피면 행복하다

너와 나 우리 함께 살면/ 이 산 저 산 들꽃처럼/ 더불어 행복한 세상

 

여명

밤새 운명 교향악에 버금가는/ 울창한 협연을 했던/ 개구리 풀벌레들 잠든 새벽/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나무가/ 푸른 여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늦은 밤까지 도란도란/ 인생의 향기를 나누고/ 어지러운 세상에 길을 열어주고/ 신음하는 지구별에 생명의 얼을 넣어주신 당신

덩그렇게 베개만 누워있는 새벽/ 홀로 눈을 떠서/ 그리운 사람들/ 녹색 세상을 동행하는 사람들/ 안부를 두 손 모읍니다

곁에 있어도 그립다는 고백이/ 육십이 되어서야 가슴을 울리며/ 징 소리처럼 잦아들고/ 동행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 곁에 없어도/ 사랑은 여명처럼 밝아옵니다

당신이라는 여명을 기다리며/ 홀로 앉은 새벽 창가/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녹색의 숲처럼 푸른 당신의 여명을/ 내 품에 안아보는 새벽입니다

 

김종철 선생님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성을 황폐화하는 근대 산업문명을 근원적으로 비판하셨습니다. 그 대안으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는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주장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생태문명의 핵심으로 소농을 생각했고,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대의제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숙의민주주의가 실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탈성장과 기본소득도 고인이 담론화시킨 중요한 의제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주장만 하지 않고 그 꿈을 펼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지원해 주셨습니다. 제가 그 은혜를 입은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큰 후원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제가 흔들릴 때 저를 잡아주는 버팀목이 되어주십니다. 특히 진안 골짜기에서 10년 동안 자급자족 생태마을 공동체를 이끌어 갈 때, 제가 가장 의지하며 힘과 용기를 얻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셨습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 김종철 아버님께 실망을 드릴 수 없기에, 눈물을 훔치고 다시 일어나 농촌과 농민과 유기농업, 생태와 자급자족 공동체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자급자족 농산물 블루베리가 조생종과 중생종이 겹치는 시기가 있습니다. 새벽 미사를 드리고 하루 종일 블루베리를 땁니다. 저온 창고에 보관 중인 블루베리를 밖에서 포장하면 온도 차이로 물방울이 생겨 배송할 수가 없습니다. 오후 4시경 겨울옷을 입고 저온 창고에서 3~40개 택배 포장을 합니다. 택배 시간을 맞추어야 하기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 됩니다. 100kg을 수확하면 자정까지 선별하고, 130kg을 따면 새벽 2~3시까지 선별을 해야 했습니다. 옷에서 쉰내가 났고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올라왔습니다. 

평화 집회 현장 오고 가는 길에 3번 목을 다친, 목디스크 때문에 그런 날이면 진통제를 먹고 자야 했습니다. 자다가 왼손이 사라집니다. 잠결에 오른손으로 더듬더듬 왼손을 찾고, “휴 왼손을 찾았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잠들 수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힘의 원천이 김종철 선생님이셨습니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자식을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다 바치셨습니다. 자식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김종철 선생님을 내 정신의 아버지, 인생의 아버지로 모셨습니다. 아버지에게 실망을 드리고 싶지 싶었습니다. 또한 김종철 아버님이 꿈꾸는 생태공동체를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 저를 모든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육신은 한 줌 가루가 되어 봉안당에 계시지만, 김종철 선생님의 정신과 사상은 우리의 육신과 영혼에 살아 있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삶과 정신 안에 녹색 세상을 만들어 주고 가신 선생님께 다시금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

김종철 선생님께서 바라시는,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 기쁘게 만나고, 우리가 연대와 평화의 삶으로 닫힌 문들을 활짝 열어젖히고, 가족과 이웃, 세상과 자연이 함께 사는 평화로운 지구별, 그 임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종수/ 무주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