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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능력과 소설의 관계 / 오정오

 

이 바보!

수업 시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나왔다.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제 발이 뭐예요? 이 아이는 ‘제 발’과 ‘제발’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은 알지만 ‘제 발’은 모르는 탓이나, 단음과 장음(제〜발)으로 설명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사전적 의미로 설명해도 아이는 이해가 미진한 표정이었다. 결국 짧은 영어로 “이건 please가 아니라 my foot이란다.” 설명하니, 그제야 아이는 언더스탠드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국 선생이 한국 아이에게 영어로 설명해야 알아듣는 이 시추에이션이라니…

아주 무식하다는 속담으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이제 이 속담은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기역 자 놓고 낫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기역’은 알아도 ‘낫’을 모른다. 이건 말이야, 시골에서 풀을 베거나 벼나 보리를 베던 농기구야 설명해 본들 본 적도 해본 적도 없으니 쉬이 알아듣지 못한다.

 

갈수록 황순원의 「소나기」를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며칠 전 학교 독서 모임에서 나왔다. 소설을 보면 소년이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소녀가 소년에게 “이 바보”라며 조약돌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참 많은 것을 함축하는 아름다운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건 나이 많은 어른들 생각이고, 적지 않은 아이들이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한다.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왜 다짜고짜 욕을 하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욕도 기분 나쁜데 돌까지 던지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뭐 이쯤이면 싸우자는 것이냐? 되레 물어본다. 속으로 “이 바보를!” 외치고, 조약돌 여러 개를 마음으로만 던져본다.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의 차례를 보면, 4장의 제목이 '소설의 수난시대'이다. 집중력을 도둑맞은 요즘 아이들이 긴 텍스트(특히 소설)를 읽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긴 텍스트를 읽지 않을 때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미국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17분이고 하루 평균 핸드폰 사용 시간은 5.4시간이었다. 복잡한 소설은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아네 망엔은 노르웨이 대학에서 문해력을 연구하는 교수로, 20년간 이 주제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독서는 오랜 시간 한 가지에 집중하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반면 핸드폰 등 화면 읽기 방식은 정신 없이 넘기면서 초점을 옮기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화면에서 글을 읽을 때 대충 훑어서 필요한 내용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읽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읽기는 더 이상 다른 세상으로의 즐거운 침잠이 아니라, 붐비는 슈퍼마켓을 마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잡아채서 빠져나가는 행위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소설은 우리를 다른 삶으로 초대하고, 다른 삶을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소설은 공감 능력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책의 말이 맞는다면, 핸드폰(온라인)과 소설은 상극일 수밖에 없다. 거칠게 정리하면, 핸드폰은 소설을 멀리하게 하고, 소설과 멀어지면 어휘력뿐만 아니라 공감 능력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오종오님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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