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종말
채소를 먹지 않는 시대
글과 사진 / 조태용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제 이 업은 끝났어요. 더 이상 유지가 안 됩니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아요."
얼마 전 학교급식에 채소를 공급하던 업체 대표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 업체는 전남과 광주지역에 채소를 납품하는 꽤 큰 업체다. 20년 가까이 그 일을 해왔는데 지난주에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다 보니 채소를 납품하던 업체의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어드니 더 이상 유지가 힘든 것이다.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고 채소를 먹지 않으니, 학교급식도 채소가 점점 밀려 나간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도 채소를 잘 먹지 않는다. 겨우겨우 채소를 먹는 것은 주먹밥이나 비빔밥이 아니고는 잘 먹지 않는다. 고기와 라면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된 지 오래일 것이다. 중학생 아들은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다. 하루에 먹는 김치양이 손톱 크기 3~4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김치찌개에 들어가 있는 것을 먹으니, 채소는 끓인 것이 아니면 손이 안 간다. 나는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한다. 고기반찬과 채소 반찬이 있으면 내 젓가락은 항상 채소에 먼저 간다. 아이들 젓가락은 항상 고기를 향해 있고 모든 고기반찬이 사라지면 그제야 채소를 먹게 될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맨밥을 먹고 말 것이다.
그야말로 청소년의 식단은 육식이 되었다.
"밥보다 빵을 채소보다는 고기를…."
산골에 사는 우리 집 밥상이 이런데 더 말해 뭐 하겠는가? 물론 우리 집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는 채소를 잘 먹었다. 그런데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잘 먹고 잘 커야 할 것 같은데 워낙 먹는 양이 적다 보니 그나마 고기라도 먹여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그렇게 식습관이 변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업체 대표는 채소 유통업을 그만두고 대파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떠났다. 이미 심을 대파 모종도 준비했고 땅도 마련했다고 한다. 그만두니 맘이 편하고 좋다고 했다.
"진작에 그만두고 떠났어야 했어요."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마리 이상의 소가 있으며 미국에서만 10만 마리의 소들이 매일 도축되고 있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중앙아메리카 삼림의 25%가 육우 사육을 위한 목초지로 개간되었다. 육우 방목이 중앙아메리카의 삼림 파괴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30쪽) 하지만 육식은 ‘종말’ 하지 않고 더 커지고 있다. 오히려 육식의 종말이 아니라 채식의 종말이 오고 있다.
채식 종말의 이유 중 하나는 채소 가격이 전혀 저렴하지 않다는 것에서 찾을 수도 있다.
최근처럼 기후 위기가 가속화되는 시기에 더욱 그렇다. 텃밭이 없는 사람들에게 쌈 채소 600g과 고기 600g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더구나 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비싼 채소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고기와의 전쟁으로 본다면 확실히 고기가 승자다.
주변에 식당을 봐도 채소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은 거의 없다. 물론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메뉴를 유지하는 식당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런 채식 식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시골 지역에서 찾기는 더욱 어렵다.
고기를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DNA에 각인된 욕망일 것이다.
인류문명 전체를 보더라도 사냥을 잘하고 고기를 먹는 것이 몸을 강하게 만들고 매력적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존재했다. 레너드 쉴 레인의 ‘지나 사피엔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의 식단이 채식에서 육식으로 변한 또 다른 결과는 우리가 고기를 더 많이 먹을수록 우리의 장이 더 짧아졌다는 것이다. 장이 짧아질수록 계속 커가는 뇌로 공급할 수 있는 산소가 더욱 많아진다. 대부분 동물은 소화기관에 가장 많은 산소를 할당한다. 식물성 음식을 소화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며, 에너지 자원이 많이 필요하다. 동물성 식품이 많은 식단으로 바꾸면, 소장은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산소가 필요하지 않으며, 일손이 남는 산소는 뇌로 차출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육식동물들은 초식동물보다 더 영리하다. (78)
칼라하리 사막의 쿵산족 사람들은 왜 사냥을 잘 못하는 남자들이 여자와 결혼하기 어렵냐는 질문에 "여자들은 고기를 좋아한다"라고 답했다.
육식이 인간에게 준 혜택 역시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랫동안 채식을 고집해 온 사람들이 꽤 있지만 모두 건강하고 건장하다. 하지만 채소는 점점 식탁의 변방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도시화가 가져온 필연일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싱싱한 채소를 소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냉동이나 냉장으로 공급되는 육식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간단하게 구워서 먹거나 가공해서 먹으면 되는 육류에 비하여 채소를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다.
대한민국 성인 중에 고기를 못 굽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채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고는 유일하게 고기와 더불어 쌈으로 먹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런 시대에 살다 보니 채소는 점점 시장에서 밀려가고 있다. 적어도 아이들 식탁에서 채소는 완전히 패배했다. 내가 고기보다 채소를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는 어려서 맛있는 채소를 많이 먹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라는 게 결국은 그 요리에 담기 과거의 향수를 다시 되새김하는 일이기도 하다. 고기만 먹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이미 그런 세대가 20대 30대일 것 같다.
육식이 좋다, 채식이 좋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의 사육을 위하여 토지가 황폐해지고 지구상의 1/3에 가까운 곡식을 소들이 먹는 데 반해 기아에 처한 인간들이 많다"라는 제러미 리프킨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고 채소가 인간에게 주는 유익함이 결코 육식에 비해 가볍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업체 사장님의 건투를 빈다. 대파는 모든 요리에 꼭 필요한 필수 채소다. ‘파절이’ 없는 고깃집은 없다.
조태용 👉조태용의 페이스북 바로가기
2001년부터 지금까지 마라톤을 즐기며 2004년 지리산에 내려와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참거래 농민장터를 운영하며 농부SOS를 통해 위기에 처한 우리 농산물 판매를 위해 분투중이다.
이 글은 👉지리산인에도 실려 있습니다.
채소의 종말
채소를 먹지 않는 시대
글과 사진 / 조태용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제 이 업은 끝났어요. 더 이상 유지가 안 됩니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아요."
얼마 전 학교급식에 채소를 공급하던 업체 대표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 업체는 전남과 광주지역에 채소를 납품하는 꽤 큰 업체다. 20년 가까이 그 일을 해왔는데 지난주에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다 보니 채소를 납품하던 업체의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어드니 더 이상 유지가 힘든 것이다.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고 채소를 먹지 않으니, 학교급식도 채소가 점점 밀려 나간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도 채소를 잘 먹지 않는다. 겨우겨우 채소를 먹는 것은 주먹밥이나 비빔밥이 아니고는 잘 먹지 않는다. 고기와 라면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된 지 오래일 것이다. 중학생 아들은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다. 하루에 먹는 김치양이 손톱 크기 3~4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김치찌개에 들어가 있는 것을 먹으니, 채소는 끓인 것이 아니면 손이 안 간다. 나는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한다. 고기반찬과 채소 반찬이 있으면 내 젓가락은 항상 채소에 먼저 간다. 아이들 젓가락은 항상 고기를 향해 있고 모든 고기반찬이 사라지면 그제야 채소를 먹게 될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맨밥을 먹고 말 것이다.
그야말로 청소년의 식단은 육식이 되었다.
"밥보다 빵을 채소보다는 고기를…."
산골에 사는 우리 집 밥상이 이런데 더 말해 뭐 하겠는가? 물론 우리 집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는 채소를 잘 먹었다. 그런데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잘 먹고 잘 커야 할 것 같은데 워낙 먹는 양이 적다 보니 그나마 고기라도 먹여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그렇게 식습관이 변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업체 대표는 채소 유통업을 그만두고 대파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떠났다. 이미 심을 대파 모종도 준비했고 땅도 마련했다고 한다. 그만두니 맘이 편하고 좋다고 했다.
"진작에 그만두고 떠났어야 했어요."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마리 이상의 소가 있으며 미국에서만 10만 마리의 소들이 매일 도축되고 있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중앙아메리카 삼림의 25%가 육우 사육을 위한 목초지로 개간되었다. 육우 방목이 중앙아메리카의 삼림 파괴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30쪽) 하지만 육식은 ‘종말’ 하지 않고 더 커지고 있다. 오히려 육식의 종말이 아니라 채식의 종말이 오고 있다.
채식 종말의 이유 중 하나는 채소 가격이 전혀 저렴하지 않다는 것에서 찾을 수도 있다.
최근처럼 기후 위기가 가속화되는 시기에 더욱 그렇다. 텃밭이 없는 사람들에게 쌈 채소 600g과 고기 600g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더구나 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비싼 채소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고기와의 전쟁으로 본다면 확실히 고기가 승자다.
주변에 식당을 봐도 채소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은 거의 없다. 물론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메뉴를 유지하는 식당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런 채식 식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시골 지역에서 찾기는 더욱 어렵다.
고기를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DNA에 각인된 욕망일 것이다.
인류문명 전체를 보더라도 사냥을 잘하고 고기를 먹는 것이 몸을 강하게 만들고 매력적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존재했다. 레너드 쉴 레인의 ‘지나 사피엔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의 식단이 채식에서 육식으로 변한 또 다른 결과는 우리가 고기를 더 많이 먹을수록 우리의 장이 더 짧아졌다는 것이다. 장이 짧아질수록 계속 커가는 뇌로 공급할 수 있는 산소가 더욱 많아진다. 대부분 동물은 소화기관에 가장 많은 산소를 할당한다. 식물성 음식을 소화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며, 에너지 자원이 많이 필요하다. 동물성 식품이 많은 식단으로 바꾸면, 소장은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산소가 필요하지 않으며, 일손이 남는 산소는 뇌로 차출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육식동물들은 초식동물보다 더 영리하다. (78)
칼라하리 사막의 쿵산족 사람들은 왜 사냥을 잘 못하는 남자들이 여자와 결혼하기 어렵냐는 질문에 "여자들은 고기를 좋아한다"라고 답했다.
육식이 인간에게 준 혜택 역시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랫동안 채식을 고집해 온 사람들이 꽤 있지만 모두 건강하고 건장하다. 하지만 채소는 점점 식탁의 변방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도시화가 가져온 필연일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싱싱한 채소를 소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냉동이나 냉장으로 공급되는 육식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간단하게 구워서 먹거나 가공해서 먹으면 되는 육류에 비하여 채소를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다.
대한민국 성인 중에 고기를 못 굽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채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고는 유일하게 고기와 더불어 쌈으로 먹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런 시대에 살다 보니 채소는 점점 시장에서 밀려가고 있다. 적어도 아이들 식탁에서 채소는 완전히 패배했다. 내가 고기보다 채소를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는 어려서 맛있는 채소를 많이 먹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라는 게 결국은 그 요리에 담기 과거의 향수를 다시 되새김하는 일이기도 하다. 고기만 먹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이미 그런 세대가 20대 30대일 것 같다.
육식이 좋다, 채식이 좋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의 사육을 위하여 토지가 황폐해지고 지구상의 1/3에 가까운 곡식을 소들이 먹는 데 반해 기아에 처한 인간들이 많다"라는 제러미 리프킨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고 채소가 인간에게 주는 유익함이 결코 육식에 비해 가볍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업체 사장님의 건투를 빈다. 대파는 모든 요리에 꼭 필요한 필수 채소다. ‘파절이’ 없는 고깃집은 없다.
조태용 👉조태용의 페이스북 바로가기
2001년부터 지금까지 마라톤을 즐기며 2004년 지리산에 내려와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참거래 농민장터를 운영하며 농부SOS를 통해 위기에 처한 우리 농산물 판매를 위해 분투중이다.
이 글은 👉지리산인에도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