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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논문 / 나를 잘 돌보고 있나요?

 


나를 잘 돌보고 있나요?

 

 

요즘 ‘돌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일상을 무리 없이 살아가기 위해선 돌봄을 주고받아야 할 때가 많아요. 여기엔 나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기 돌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쁜 삶에서 나를 지켜내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아요. 일에 치이다 보면 모든 돌봄에 소홀해지니까요.

한창 온라인에 돌았던 웃픈 텍스트를 하나 가져왔는데요. ‘나는 1인 가구라서 내가 야근을 하면 가정이 무너진다’는 건데, 너무 맞는 말이죠. 평일에 야근이 몰렸다면 집에 와서 제대로 생활을 해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효율과 쓸모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 맥락에서 볼 때 자기 돌봄은 사치스러운 개념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 자신을 우선순위 바깥에 두었을 때, 소진된 나를 어떻게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요? 어쩌면 나를 살피는 것은 자기 돌봄인 동시에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작은 시작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내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도, 세상도 돌볼 수 있는 거니까요.

 

돌봄에 관한 본질적인 물음은 나이 먹음에 대한 불안과 얽혀 있어요. 끝까지 건강해야 스스로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우리 사회에서 일한다는 것은 경제적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이란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걱정과 불안은 나이 들어서도 내가 나로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과 함께 합니다.

 

그러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2022년 기사를 봤어요.  “일본 노년 여성들이 만든 ‘다세대 공생형 커뮤니티’”라는 제목의 기사인데요, 일본 도치기현 나스마치에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한 커뮤니티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의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나스마을만들기 주식회사’는 고령자 주택 주변에 다세대, 다문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의지하며 배우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들었어요. 대표인 치카야마 케이코 씨의 표현이 인상 깊어요. “고령자 주택을 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누구든 어디서든 자기답게 살 수 있는 마을 만들기가 목적입니다.”라고 하는데, 그쵸, 나이 들어서도 자기답게 살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나스 마을 만들기를 이끄는 멤버들은 1970년대 일본에서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 인연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구성원들의 인터뷰 기사도 흥미로웠어요. 예를 들면, “어머니를 돌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라도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누워만 있어도 정치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거 아냐, 저건 틀려” 그랬다니까요.” 이런 부분인데요. 같은 것에 분노하고 같은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행복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북 전주의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공간비비)’이 그곳입니다. 2003년 비혼여성 모임에서 시작해 공공 임대아파트에 구성원들이 입주하면서 1인 가구 생활공동체로 확장하게 됩니다. 지금은 전 세대의 약 3%인 23가구가 비혼여성 1인 가구로 이뤄져 있다고 해요. 아파트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공간비비’에선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그 덕분에 ‘따로 또 함께 살아가기’가 가능하다고요. 코로나19 격리가 한창이었던 때도 서로를 향한 돌봄 레이더 덕분에 든든했겠다 싶어요. 살짝 샘이 나기도 하고요.

 

"일요일, ‘공간비비 조합원 단톡방’에 생일자 축하 인사를 올렸다. 상근자들의 격리 생활이 전해졌다. 미각은 어떠냐고, 우리는 끼니마다 단톡방에 뭐 먹을 건가, 토의함. 답답하지 않냐고, 우리는 집콕 스타일. 많이 아프지 않냐고, 우리는 덕분에 휴가 중. 그날 저녁 샘, 딸기를 문 앞에 놨어요. 땡큐! 소리도 없이 왔다 갔네."

 

최근엔 비비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공동체 주택을 짓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지치지 않고, 멈추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싶어요. 돌봄의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오늘 읽은 논문은 <가족구조 변화와 지역공동체의 대안적 친밀성의 가능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 부산 대안가족허브센터 사례 중심(2021)>입니다. 논문은, 공동 주거와 경제적 협동, 돌봄에 있어 혈연 기반의 가족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패치워크가족(전체적으로 다양한, 그러나 원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모여 형성된 새로운 가족을 말하는 개념)이 등장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안가족공동체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례 분석에 앞서 선행연구를 통해 다양한 지역공동체 사례를 살펴보는데요.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동육아, 공동주거, 마을공동체, 교육공동체, 돌봄공동체 등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민동락공동체 등 지역 노인에게 일터를 제공해 소득 창출은 물론 외로움과 고독, 소일거리 필요 등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고요. 공동육아로 소통과 관계의 돌봄을 구성하고 다시 대안학교 설립으로 공동체성을 확장해 간 사례도 언급됩니다. 연구자는 선행연구로부터 공동체의 형식이나 방식, 어떤 대상에 초점을 두는지 등은 다르지만, 돌봄과 공동경제방식에 대한 과정들을 공통으로 볼 수 있다고 정리합니다. 주거공동체에서의 상호돌봄, 마을공동체에서의 협동 돌봄, 그리고 협동조합 방식을 통한 공동생산 말이죠.

 

연구자들은 시민이 운영하는 복지법인 우리마을에서 운영하는 대안가족허브센터를 거점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을 분석합니다. 기존의 주민 소모임을 중심으로 4~6명이 하나의 대안가족을 구성하고, 함께 교류하면서 지역에 거주하는 또 다른 1인 가구,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돌봄 활동을 전개합니다. 또한,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전력질주 협동조합을 만들어 노인들의 참여를 통한 생산과 경제활동도 함께 모색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차근차근 쌓여 ‘골목빨래방’이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마을 빨래터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은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답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분석하며 대안가족공동체에는 돌봄, 협동, 관계 중심의 돌봄공동체, 공동생산과 분배의 협동공동체, 그리고 관계 친화적 공동체 특성이 확인된다고 정리합니다. 특히 돌봄의 제공자와 수혜자라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복합적인 관계에서 상호의존하는 형태로 교류가 나타난다고 보는데요. 연구자들은 폴라니의 논의처럼,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 의존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경제활동의 주된 목표도 꼭 이익의 확대가 아니라 상호성과 재분배를 통한 상호의존적인 공동체의 자립에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속에서 서로 신뢰를 쌓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겠지요.

 

소셜섹터는 지역사회에서 열린 관계를 통해 만들어 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혜성, 연대성, 신뢰와 우정의 친밀성을 어떻게 견고하게 쌓아갈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이 가치야말로 시대가 원하는 것일 텐데, 이를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절히 발현시켜 낼 수 있을지가 항상 고민입니다. 방법의 다양성을 찾는 것, 그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요?

핀란드의 '로푸키리(Loppukiri)'는 노인들 스스로 문제해결을 해보겠다는 목표를 갖고 이뤄진 노인공동체입니다. 요양시설이 아닌 공동주택 형태의 노인공동체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만들어졌다고 해요. '전력질주 협동조합'은 로푸키리를 모델로 만들어 운영중입니다. @국제신문(201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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