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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태평? / 최종수 신부

무사태평?

 최종수 신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성철 큰스님 말씀입니다.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라는 뜻이 아닐까요, 있는 그대로 사물이 있는 그대로 있기를 바라시는 말씀이 아닐까요.

 

지구온난화를 넘어서 기후위기의 시대입니다. 지구 온도가 1.5도 올라가는 시점이 2030년이라고 기후전문가들이 예측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7년 남았습니다. 1.5도가 올라가면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1.5도 기후상승은 인류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변곡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요. 마치 7년이 700년이 남은 것처럼 무사태평입니다.

왜 이리도 위기 감지가 무딜까요?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탐진치(貪瞋癡)’의 탓이 아닐까요.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하는 기후위기는 탐욕, 분노와 불만, 어리석음이 불러온 인류 종말의 시작이 아닐까요?

설악산 자락으로 1992년에 귀촌해서 31년 동안 설악산 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는 박그림 형님을 만나러 갑니다. 75세 고령에 대상포진으로 체력 회복이 더딘 형님에게 맛있는 식사 대접하러 갑니다. 개봉해서 복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캐나다 지인이 보내준 종합비타민과 오메가3, 목폴라를 챙겼습니다. 저보다 형님에게 더 필요한 영양제입니다. 자주 가시는 식당이라 형님이 계산할 것 같아 금일봉을 챙겼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내 병시중하느라 성당에 나오지 못하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일요일마다 병간호를 가시는 형수님도 제 바람대로 함께 자리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형님 댁으로 갑니다. 소박한 단독주택 텃밭에 최병수 형님의 산양 철판 설치예술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형수님이 차려온 다과와 유자차를 마십니다. 31년 동안 자연과 설악산과 소통해 오신 동행의 향기가 피어나는 대화가 오갑니다. 형님이 빛바랜 완숙 토마토 상자를 들고 오십니다. 산양의 두개골과 뿔을 꺼내십니다.

“보시와 보신의 차이를 산양에게서 배웁니다. 산양이 죽으면 모든 것을 동물과 새들, 벌레와 흙에게 보시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보신을 합니다. ‘ㄴ’ 받침 하나가 인간과 산양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말해줍니다.”

“해외 유명 방송국에서 속초 청초호의 갈대가 어우러진 호수의 경치를 극찬하며 다큐를 찍었습니다. 청초호 40%를 매립해서 개발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고개를 저으며 ‘크레이지’ 미친 짓이라 하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오색케이블카 찬성론자들이 노약자와 장애인도 설악산을 오를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장애인들은 명절만 되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우리도 고향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장애인 이동권조차 보장 안 된 나라에서 개발론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입니다. 장애인단체에서 우리를 더 이상 케이블카 개발 논리에 이용하지 말라고 성명서를 냈습니다. 지금 개발을 멈추어도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돈과 토건 기업들, 정치인들의 개발선동과 자연을 파괴하는 정책들 때문에 미래 세대들에게 끔찍한 인류 종말의 재앙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지구 끝까지 간다는 나비효과 이론처럼 어떤 개발이든지 기후위기의 재앙을 불러올 뿐입니다.”

“10년 동안 일요일마다 버스 타고 서울 성모병원에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다니신 형수님의 내조가 형님의 자연과의 동행을 가능케 했습니다. 형님은 천사 형수님 덕분에 지금까지 지구 살리기 운동을 해 오신 것입니다.”

“내일 오색케이블카 기공식 반대운동에 가기 전에 본당신부님께 강복을 받고 가려고 했는데, 신부님이 방문해서 강복을 주시네요.”

호주머니에서 금일봉 봉투를 꺼내 책상 위 순수 우리말 사전 아래 몰래 넣어 놓습니다. 31년 동안 지구 살리기 운동에 헌신하신 형님의 지극한 열정을 듣고, 귤껍질을 까서 한 알 한 알 다듬어 주시는 형수님의 정성을 먹고 기도를 바치고 안수를 해드립니다. 텃밭에 서 있는 산양이 빙그레 웃으며 배웅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