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
김우성 자연과 공생 연구소 소장

금강소나무 숲 사진출처 / 산림청
숲의 주인 자리 내어준 소나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소나무는 무려 애국가 가사에 등장하는 나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는 항상 소나무가 압도적인 1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사랑한다. 보통의 상록성 침엽수들은 줄기가 곧게 위로 뻗지만 소나무는 자라는 환경에 따라 줄기가 휘어져 구불구불하게 자라기도 한다. 험한 환경일수록 더 심하게 구부러지는 경향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줄기에서 자연을 이겨내는 나무의 강한 생명력을 느끼고, 역경을 극복하는 삶을 칭송한다. 시련을 이겨낸 사람의 삶을 존경하듯 우리는 역경을 품고 만들어진 소나무의 굴곡을 사랑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소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소나무는 건축재, 가구재, 농기구의 재료, 땔감, 구황식품으로도 널리 이용되었다. 금줄부터 성주목까지 소나무는 한국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삶과 정서의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울타리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인 소나무는 현재 거대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소나무는 뿌리 표면에 사는 곰팡이들과의 공생을 통해 산성화되거나 건조한 토양에서 잘 견딘다. 우리나라의 숲이 척박하던 시절 푸르름을 주던 소중한 나무지만 숲이 자람에 따라 참나무류를 비롯한 활엽수들에 숲의 주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천이’라고 부르는데,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활엽수들이 자리 잡기 어려울 정도로 척박한 지역이나 주기적으로 산불과 같은 교란이 발생하는 지역, 토양의 염도가 높은 해안가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소나무 숲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쇠퇴하게 된다.
빠르게 북상하는 분포적지
잦아지고 대형화하는 산불
그냥 두어도 분포 면적이 줄어들게 될 소나무 앞에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해지는 날씨로 악재들이 겹쳤다. 소나무의 분포적지가 빠르게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소나무의 분포적지가 씨앗의 발아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북상함에 따라 이동하지 못한 소나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잦아지고 대형화하는 산불 또한 소나무 숲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놓고 있다. 2022년 봄, 우리는 울진 삼척 산불로 2만923ha의 숲을, 강릉 동해 산불로 4015ha의 숲을 잃었다. 이는 울산광역시 중구, 동구, 북구 전체를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이다. 많은 집이 불타고,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동식물이 죽거나 서식지를 잃었다. 산불은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큰 산불이 난 강원 영동지방은 매년 봄철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어오면서 발생하는 푄현상으로 인해 극도로 고온 건조한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영동지방의 소나무 숲을 바짝 말려 언제든 불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를 수 있는 땔감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바람은 건조할 뿐 아니라 지형의 영향으로 속도까지 매우 빨라 불씨를 순식간에 먼 곳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산불 대형화의 주된 원인이 된다.
산불의 연료도 잔뜩 준비돼 있다. 강원 영동지방 숲의 대부분은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는 침엽수로서 불에 타기 쉬운 송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활엽수에 비해 산불에 취약한 종이다. 소나무 숲은 매년 봄 송진을 가득 머금고 바짝 마른 상태로 불을 기다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형과 기상을 통제할 수 없다. 운 좋게 진화가 용이한 곳에서 불이 시작되거나, 때마침 비가 내리는 행운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연료의 일부를 통제할 수 있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더 커지고 잦아질 가능성이 있는 산불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숲의 구조와 수종 구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소나무재선충병 대응
수종 갱신 나선 산림청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사업장 안전 점검 사진출처 / 산림청
걸리면 죽는다는 소나무재선충병 또한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도로 주변에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소나무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많은 예산을 지출했고, 많은 사람이 오랜시간 긴 싸움을 벌여왔으나 소나무재선충병의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유입된 나라들은 대부분 방제 과정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만큼 소나무재선충병은 치명적이고 방제하기 어렵다.
산림청은 지난 3월 소나무재선충병 대응을 위한 수종 갱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소나무 숲을 베어내고 다른 종의 나무를 심겠다는 뜻이다. 정책의 취지를 잘 살려서 사업을 집행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방향 자체는 옳다고 본다. 한반도에서 소나무를 없애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나무는 우리 곁에 오래 남을 것이다.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 보전 가치가 뛰어난 곳, 소나무 이외의 종이 자라기 어려운 곳, 목재나 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곳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지켜내야 한다. 소나무재선충의 피해가 심각한 곳, 반복적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곳의 소나무를 자연스러운 천이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줄여나가자는 것이다.
소나무의 자리를 줄이고
더 크고 다양한 백년숲을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심각한 지역에는 이미 죽은 나무들이 많다. 소나무재선충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피해목 벌채의 필요성은 자명하다. 베어진 소나무는 어디로 가게 될까? 사용처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무를 베면 열병합발전소의 연료로 소모될 가능성이 크다. 국산 목재의 자급률은 15% 안팎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합판이나 보드처럼 부가가치가 낮은 상품으로 가공되고, 대부분은 바이오매스 연료로 사용된다.
베어진 소나무가 싸구려 땔감으로 소모되고, 소나무에 저장돼 있던 탄소가 무의미하게 대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게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소나무를 베어내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 소나무로 만든 건물을 지을 수 있어야 하고, 소나무로 가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나무를 베고, 옮기고, 가공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냄으로써 소나무가 저장한 탄소가 대기 중으로 날아가지 않고 우리 곁에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그 과정을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일자리를 만들고, 부가가치를 만들고, 숲에서 출발하는 가치사슬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소나무 숲의 밀도를 조절하고, 더 건강한 미래목이 자라나게 함으로써 숲을 건전한 구조로 바꾸고, 더 많은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다양성 높은 숲을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소나무 숲이 있는 지역에서 지역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오십 년이 헐벗은 산을 푸른 산으로 만든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오십 년은 그 숲을 삶의 터전 삼아 더 큰 숲으로 만들어 나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소나무와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소나무와 이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도 소나무를 사랑한다. 소나무와의 이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당장 소나무와 헤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소나무와 느린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 오십 년간 우리는 소나무의 자리를 줄이고, 더 크고 다양한 다음 세대의 백년숲을 만들어가야 한다.
김우성 / 자연과 공생 연구소 소장
소나무와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
김우성 자연과 공생 연구소 소장
금강소나무 숲 사진출처 / 산림청
숲의 주인 자리 내어준 소나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소나무는 무려 애국가 가사에 등장하는 나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는 항상 소나무가 압도적인 1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사랑한다. 보통의 상록성 침엽수들은 줄기가 곧게 위로 뻗지만 소나무는 자라는 환경에 따라 줄기가 휘어져 구불구불하게 자라기도 한다. 험한 환경일수록 더 심하게 구부러지는 경향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줄기에서 자연을 이겨내는 나무의 강한 생명력을 느끼고, 역경을 극복하는 삶을 칭송한다. 시련을 이겨낸 사람의 삶을 존경하듯 우리는 역경을 품고 만들어진 소나무의 굴곡을 사랑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소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소나무는 건축재, 가구재, 농기구의 재료, 땔감, 구황식품으로도 널리 이용되었다. 금줄부터 성주목까지 소나무는 한국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삶과 정서의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울타리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인 소나무는 현재 거대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소나무는 뿌리 표면에 사는 곰팡이들과의 공생을 통해 산성화되거나 건조한 토양에서 잘 견딘다. 우리나라의 숲이 척박하던 시절 푸르름을 주던 소중한 나무지만 숲이 자람에 따라 참나무류를 비롯한 활엽수들에 숲의 주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천이’라고 부르는데,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활엽수들이 자리 잡기 어려울 정도로 척박한 지역이나 주기적으로 산불과 같은 교란이 발생하는 지역, 토양의 염도가 높은 해안가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소나무 숲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쇠퇴하게 된다.
빠르게 북상하는 분포적지
잦아지고 대형화하는 산불
그냥 두어도 분포 면적이 줄어들게 될 소나무 앞에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해지는 날씨로 악재들이 겹쳤다. 소나무의 분포적지가 빠르게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소나무의 분포적지가 씨앗의 발아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북상함에 따라 이동하지 못한 소나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잦아지고 대형화하는 산불 또한 소나무 숲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놓고 있다. 2022년 봄, 우리는 울진 삼척 산불로 2만923ha의 숲을, 강릉 동해 산불로 4015ha의 숲을 잃었다. 이는 울산광역시 중구, 동구, 북구 전체를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이다. 많은 집이 불타고,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동식물이 죽거나 서식지를 잃었다. 산불은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큰 산불이 난 강원 영동지방은 매년 봄철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어오면서 발생하는 푄현상으로 인해 극도로 고온 건조한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영동지방의 소나무 숲을 바짝 말려 언제든 불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를 수 있는 땔감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바람은 건조할 뿐 아니라 지형의 영향으로 속도까지 매우 빨라 불씨를 순식간에 먼 곳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산불 대형화의 주된 원인이 된다.
산불의 연료도 잔뜩 준비돼 있다. 강원 영동지방 숲의 대부분은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는 침엽수로서 불에 타기 쉬운 송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활엽수에 비해 산불에 취약한 종이다. 소나무 숲은 매년 봄 송진을 가득 머금고 바짝 마른 상태로 불을 기다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형과 기상을 통제할 수 없다. 운 좋게 진화가 용이한 곳에서 불이 시작되거나, 때마침 비가 내리는 행운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연료의 일부를 통제할 수 있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더 커지고 잦아질 가능성이 있는 산불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숲의 구조와 수종 구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소나무재선충병 대응
수종 갱신 나선 산림청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사업장 안전 점검 사진출처 / 산림청
걸리면 죽는다는 소나무재선충병 또한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도로 주변에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소나무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많은 예산을 지출했고, 많은 사람이 오랜시간 긴 싸움을 벌여왔으나 소나무재선충병의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유입된 나라들은 대부분 방제 과정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만큼 소나무재선충병은 치명적이고 방제하기 어렵다.
산림청은 지난 3월 소나무재선충병 대응을 위한 수종 갱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소나무 숲을 베어내고 다른 종의 나무를 심겠다는 뜻이다. 정책의 취지를 잘 살려서 사업을 집행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방향 자체는 옳다고 본다. 한반도에서 소나무를 없애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나무는 우리 곁에 오래 남을 것이다.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 보전 가치가 뛰어난 곳, 소나무 이외의 종이 자라기 어려운 곳, 목재나 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곳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지켜내야 한다. 소나무재선충의 피해가 심각한 곳, 반복적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곳의 소나무를 자연스러운 천이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줄여나가자는 것이다.
소나무의 자리를 줄이고
더 크고 다양한 백년숲을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심각한 지역에는 이미 죽은 나무들이 많다. 소나무재선충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피해목 벌채의 필요성은 자명하다. 베어진 소나무는 어디로 가게 될까? 사용처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무를 베면 열병합발전소의 연료로 소모될 가능성이 크다. 국산 목재의 자급률은 15% 안팎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합판이나 보드처럼 부가가치가 낮은 상품으로 가공되고, 대부분은 바이오매스 연료로 사용된다.
베어진 소나무가 싸구려 땔감으로 소모되고, 소나무에 저장돼 있던 탄소가 무의미하게 대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게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소나무를 베어내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 소나무로 만든 건물을 지을 수 있어야 하고, 소나무로 가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나무를 베고, 옮기고, 가공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냄으로써 소나무가 저장한 탄소가 대기 중으로 날아가지 않고 우리 곁에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그 과정을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일자리를 만들고, 부가가치를 만들고, 숲에서 출발하는 가치사슬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소나무 숲의 밀도를 조절하고, 더 건강한 미래목이 자라나게 함으로써 숲을 건전한 구조로 바꾸고, 더 많은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다양성 높은 숲을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소나무 숲이 있는 지역에서 지역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오십 년이 헐벗은 산을 푸른 산으로 만든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오십 년은 그 숲을 삶의 터전 삼아 더 큰 숲으로 만들어 나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소나무와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소나무와 이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도 소나무를 사랑한다. 소나무와의 이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당장 소나무와 헤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소나무와 느린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 오십 년간 우리는 소나무의 자리를 줄이고, 더 크고 다양한 다음 세대의 백년숲을 만들어가야 한다.
김우성 / 자연과 공생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