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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공연

책소개이규식의 세상속으로 : 나의 이동권 투쟁 이야기

이규식의 세상속으로 : 나의 이동권 투쟁 이야기

임준연

 

“넌, 전사가 되고 싶은 게냐”

아내가 묻는다. 그래 필요하다면 싸워야지. 싸우지 않고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던가. 가족을 위해 권력과 싸우는 시간과 정성을 나누어 더 투자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은근한 압력을 담는 대화중이었다. 나는 안다. 가정과 바깥일(싸움). 둘 다 잘 할 수는 없다. 둘 다 해보려고 애는 쓰겠지만 양쪽에 불만족스런 결과가 나올 뿐이다. 시간을 나눌 수도 없고, 겨우 활동과 휴식시간을 분명하게 하는 것으로 정신과 몸 건강을 유지하려 노력할 뿐이다. 오해를 줄이자면, 이하의 ‘싸움’은 부부간을 포함해 개인 간이 아니라 정부, 정치권이나 권력자와의 싸움을 뜻하는 것이다. 

진안으로 이주하고 나서 근 15년을 크고 작은 싸움에 발을 담갔던(부끄럽게도 푹 담근 적은 많지 않다) 나로서는 각 싸움의 명분과 목적을 잘 안다. 하지만 이기는 싸움보다 지는 싸움에 같이 했던 적이 훨씬 많았고, 그 목표는 이루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거나 지역과 마을을 핑계도 결국 등을 돌린 싸움터도 많아서 많이 부끄럽기도 하다.

차라리 줄이고 집중해보자. 하여 지금은 내가 사는 동네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다. 예산을 공부하는 모임을 꾸리고, 지역 월간지에 기사를 쓰고, 교육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과 같이하면서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정책의 방향을 진보적으로 바꾸는 데에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고 있는 중이다. 

국회에서,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어느 시청과 군청 앞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시설 앞에서 싸우시는 분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아 두 손 모은다. 

 

‘나’의 참여, 내가 싸움에 참여하는 것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태원참사, 오송 지하차도 사고의 유가족은 왜 싸우는 걸까. 당사자가 아닌 나는 과격하고 극렬하게 싸우는 집단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과거 민주노총의 그것을 보면서 그랬고 장애인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열차궤도 위에 드러눕거나, 명절 버스 앞에서 버스를 태워달라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왜, 저렇게 하지? 보이는 것이 다인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시위하는 것은 오히려 더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지금에 와서 깨닫지만 얕게 보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그들의 삶, 싸움의 계기와 원인에 호기심은 없었다. 당연히 의문은 깊지 않았고 사유는 멈췄다.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싸워야 하는지는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으리라. 

 

5년 전부터 장애인활동지원사를 하면서 중증장애인을 만났다. 자해하는 자폐장애인과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을 방치해 죽음으로 내모는 제도와 관련지원예산의 미비함을 알게 되었고, 휠체어 장애인과 함께 하면서, 멀쩡히 사고하고 대화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욕구를 장애인은 가질 수 없으며 해소하기엔 장벽이 너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욕탕, 수영장은 물론 식당, 카페, 빵집, 관공서를 드나들지 못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놀랐다. 화장실이 아무리 급해도 전동휠체어로는 군청, 의회의 화장실이나 공중화장실의 대부분에 접근이 불가하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같은 사람인데 왜일까. 여전히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병신’으로 취급하고 눈에 보이지 않길 바라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를 돌아봤다. 30대가 되기 전까지 중증장애인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사람 많은 서울에 살면서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강남역에서 홍대 앞에서 본적이 없다. 수백만의 장애인들은 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일까.


 책은 싸움의 현장에서 맨 앞에 나서는 한사람의 일대기다. 그 사람은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았다. 불의와 부정, 존재의 삭제. 원래 그런것인줄 알았단다. 책은 종교 공동체에서의 경험, 시설에서 경험, 존재의 부담을 느낀 가족에게서 사이비 재활사에 맡겨져 혹독한 고문(?)을 당한 경험이 그의 청년기까지 이어졌다. 읽으며 호기심이 샘솟고 그의 부정의 삶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그가 장애인이동권의 투사가 되기까지의 경험에 공감이 되었다. 그가 맨 앞에 함께 싸워서 이루어낸것들을 알게 되었다.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생기고 가게의 문턱에 경사로가 생기는 일들이었다. 오히려 장애인보다 노인들이 훨씬 더 많이 이용하고 있는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는 그들의 권리가 모두에게 편리하고 좋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변하고 있는가. 변하고 있다. 그를 위시한 많은 당사자와 주변에 손잡은 사람들이 수십 년간 싸워온 결과다. 책을 읽으며 다시 깨닫는다. 그냥 변하는 것은 없다. 바꾸고 싶다면 요구해야 한다. 묻고 따지고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면 싸워야 한다. 싸움이 세상을 바꾼다. 이규식이 살아 온 삶, 그의 싸움이 있었기에 바뀌었다. 이동권에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만민이 힘을 가진 민주적 세상이 열린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해야 빨리 바뀐다. 그를,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푸른 하늘아래 몸을 뒤틀고 휠체어에 앉은 그의 표지사진을 넘겨 책속의 그의 삶을 넘겨보기를, 읽어보기를, 펴보기를. 그리하여 우리와 더불어 보이지 않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실낱같은 인연의 끈을 이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