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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공연

책소개[밥은 하늘입니다] 전희식 著

 밥은 하늘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보따리학교’를 우리 집에서 열었을 때다. 밥 먹을 때 돌아가면서 하는 기도 시간에 울산에서 온 한 아이가 기도를 노래로 했다. ‘보따리학교’는 빛살 김재형 선생 등과 함께 해월 최시형 선생의 별호를 따서 만든 유목형 대안학교의 이름이다. 그 아이가 부른 노래는 이렇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딱 이렇게 두 번 반복해서 불렀다. 두 번째 부를 때는 다른 사람들도 낮은 목소리로 같이 불렀다. 김지하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인데 노랫말도 간단하고 곡조도 쉬웠다. 이 시는 밥의 개념이 딱 한 단어로 정리되어 있다. ‘하늘’이라는 것이다. 밥의 성질도 나와 있다.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이라 서로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독차지하지 말고 같이 나눠라.’ 평화 세상의 이치, 생명 세상의 이치가 이 한마디에 담긴다. 

4연으로 구성된 이 시의 셋째 연을 보자.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이라고 했다. 비로소 분명해졌다. 하늘은 온누리다. 대자연이고 하느님이고 스승이다. 배움을 크게 일으켜 주는 그 어떤 존재. 평화의 세상과 생명의 세상을 겪는 것이 밥을 먹는 일이다. 그건 곧 천국이다. ‘밥값 한다’라는 말의 의미이기도 하겠다. 

시의 마지막 연은 딱 한 줄이다.

 

아아~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아아’라는 감탄사가 밥을 나눠 먹어야 하는 뜻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세상 모든 다툼은 밥그릇 싸움이다. 밥그릇 싸움을 그치는 길은 밥을 나누는 것밖에 없다는 호소이기도 하다. 밥은 누군가가 독차지하고 나서 선심 쓰듯 나눠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나누는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성실하고 능력 있고 겸손하고 착하다고 해도 그 사람이 밥을 독차지해서는 안 된다. 밥에는 천지의 노고가 스며들어 있다. 밥이 오롯이 내 것일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한 끼 밥값으로 8천 원을 줬더라도 밥이 내 것이라기보다 천지의 노고에 내가 얹혀가는 것이다. 

 

누구나 밥을 먹어야 일도 하고, 수행도 하고, 놀 수도 있고, 공부도 한다. 그래서 “공양간에서 보살 난다”라는 말이 있다. 밥의 종류 또는 식품 재료, 밥을 대하는 마음, 밥 먹는 법, 밥의 색이나 맛을 내는 일 등 이 모든 게 하늘을 모시는 일이다. 

 

숭산 큰스님은 “밥 먹을 때에는 밥만 먹어라.”하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모아 밥을 정성스럽게 대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야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일이 된다. 

동학에서는 동식물도 다 하늘로 여긴다. 생명체와 무생물, 존재와 부존재 모두 다 하늘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동학에서 말하는 하늘 모심을 밥 이야기로 풀고 있다. 동학이라고 해서 160여 년 전(창도)이나 130년 전(동학농민혁명)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공중화장실에서 화장지를 손에 둘둘 감아서 쓰는가 아니면 한 마디 한 마디를 정확히 가늠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떼어내는가. 세면대에서 손이나 얼굴을 씻을 때 물마개를 막고 수도꼭지를 트는가, 그냥 틀어 놓고 씻는가. 하늘 모심은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 스며있다. 

 

10.29 이태원 참사를 당한 가족들의 울부짖음에 개인적인 위로와 조문도 하지만, 정부의 태만과 무책임을 질타하고 당국자의 진정 어린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 봤는가? 정부의 정책과 정치 행위를 살피고, 제도와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도 하늘을 모시는 일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고자 한다. 내 안의 세계와 밖의 세계가 하나로 온전하게 통합되고자 하는 책이다. 

 

해와 달도 사람처럼 먹고 마시고 자야 한다

 

2022년 2월 24일, 전라북도 도청 앞이었다. 〈새만금 해수유통 공동결정 촉구 기자회견 및 생명평화 기도회〉 자리였다. 국무총리와 국토부 장관까지 참석하는 새만금위원회가 그곳에서 열렸다. 

여기서 나는 기도 형식을 빌려 절규했다. “해월 선생께서는 일찍이 산짐승, 날짐승, 물살이도 입고 덮고 자고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해와 달과 별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물살이와 나는 새들이 입고 덮고 먹는다는 게 뭐겠습니까. 우리는 그들의 잠자리를 빼앗았고 그들의 밥그릇과 그들의 옷을 빼앗았습니다”라고. 천도교를 비롯한 5개 종단이 주최한 행사였다. 


기후폭동, 기후위기, 온난화, 기후재난, 기후붕괴…. 어떻게 불리든 이건 날씨 얘기가 아니다. 날씨를 넘어섰다. 문명의 위기, 문명과 인류 붕괴의 총체적 난국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탈핵, 새만금 해수 유통,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현장으로 간다. 혼자, 또는 종교환경회의랑 같이. 또는 천도교 교단의 이름으로. 모든 환경 문제, 생명 문제는 총체적 기후위기로 귀결되고 있다. 

 

천도교 경전의 해월 선생 법설 ‘천지부모’ 편에서처럼 오곡이 천지 부모가 주시는 젖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참 불효막심한 짓을 맹렬하게도 하는 셈이다. 부모인 천지의 가슴팍을 짓이기고 속을 뒤집어 놓으며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한다. 이는 ‘천지부모’ 편 외에 ‘삼경’, ‘이천식천’에 잘 나온다. 동학에서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늘(한울)을 공경하라고 했는데 하늘은 사람을 떠나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서 아무리 조상과 하늘을 공경한답시고 법석을 떨어도 사람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물을 쏟아버리고는 해갈을 바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씨앗을 놔두고 바라보기만 하고 심지 않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주제와 관심은 결국 밥상이다.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 이치에 따른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좋은 흙이 건강한 작물을 만들고 건강한 작물이 살아 있는 밥상을 보장한다는 땅 살림, 사람 살림, 하늘 사람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우리가 밥을 제대로 먹는지 돌아볼 일이다.

 

글 / 목암 전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