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복지/ 환경 어른들의 구호 속에 묻힌 아이들의 외로움과 행복할 권리

어른들의 구호 속에 묻힌 아이들의 외로움과 행복할 권리

작은 학교 살리기에 앞서 당장 시급히 챙겨야 할 것은?


24. 6. 25  이규홍(nogak1351@gmail.com)



천둥벌거숭이 시절부터 코밑에 거뭇거뭇 수염이 돋아날 무렵까지 어린 시절 추억 속에는 어김없이 친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밥때도 잊은 채 막대기 옆에 차고 고샅길을 뛰어다니고 학교에서 말썽부리다 선생님에게 붙잡혀 단체로 벌을 서며 함께 자라난 친구들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나이 들어 일자리 찾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을 때 듬직한 미소로 등을 토닥여 준 것도 친구였고, 타향살이 힘들어 어깨 처져있을 때 언제든 고향으로 돌아오라며 팔을 벌려준 것도 친구들이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고향은 곧 ‘친구’의 다른 이름이고 친구들과의 추억은 언젠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이유였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우리나라는 인구 절벽에 부딪혔고 특히 농산어촌 마을에서는 임신부나 어린아이를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전북 진안군의 예에서 보듯, 한 학년에 10명 미만의 학교가 부지기수다. (표에서의 학생 수는 전교생 숫자) 심한 경우 한 학년에 1~3명의 학생이 전부인 곳도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도시 지역 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평균 580.3명이라면 농촌 면 지역 초등학교의 71.1%가 전교생 60명 미만의 ‘작은 학교’다. 전교생이 20명도 되지 않아 폐교 위기에 몰린 학교의 비율도 19.9%다. 






진안군 용담면의 한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생이 1명인 학교에 들어가 담임선생님과 단둘이 2학년까지 다니다 결국 읍내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교육 전문가가 아닌 기자의 생각에도 동년배와의 협동과 경쟁을 배울 기회 자체가 없다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요소인 동료관계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주천중학교를 졸업한 한 남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동급생인 여학생 한 명과 3년을 보내야 했다. 그 동급생이 중학교를 다른 곳으로 가면서 중학교 입학은 혼자 해야 했고, 중학교 3년간 혼자 교실을 지켜야 했다. 3학년 2학기에 학생 한 명이 전학을 와 다행히 졸업앨범에 자기 사진 한 장만 덜렁 올라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19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의 이 소년은 소풍도, 수학여행도 혼자 가야 했고, 동급생들과 축구나 농구 한 번 하지 못한 채 중학교 시절을 마쳐야 했다.

이 학생이 스스로 원해서 작은 학교로 혼자 등교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학년에 학생이 한 명도 없을 때 학교가 입게 될 타격이 컸을 것이고 집안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어른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이 학생을 학교에 붙잡아 두었다. 하지만 왜 학교와 지역사회는 이 학생과 같은 아이들을 외롭게 혼자 두어야 했을까? 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작은학교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아이들을 외롭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당연히 누려야 할 교육권과 행복권을 박탈해서도 안 된다. 아이들에게는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어린 시절이고 학창 시절이다. 폐교 위기의 작은 학교도 지키고 학생들의 학습 효과도 올리고 아이들을 외롭지 않게 해 줄 방법을 시급히 찾아 실행해야 한다.

그래서 상상을 해봤다. 농촌의 초등학교 중 전교생 60명 미만인 작은 학교들이 인근의 다른 학교 서너 곳과 통합수업을 하면 어떨까? 우선 예체능이나 특별활동 같은 수업만이라도 모여서 함께 하면 좋겠다. 교사들이야 좀 바빠지겠지만, 같은 취미를 가진 다른 동네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같은 성별의 동년배끼리 할 수 있는 활동과 놀이를 지속해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중학생은 움직임이 더 자유로울 테니, 어느 학교에선 언어 과목을, 어느 학교에선 수리 과목을, 어떤 학교에선 체육과 예술 과목을 특화해 인근 지역의 학생들이 그 학교에 다 같이 모여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면 좋겠다. 통합수업으로 교육의 내용과 질을 높여 학습환경을 좋게 하는 것도 장점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고향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는 게 가장 큰 이로움이 되지 않을까?

작은 학교에 학생이 적으니, 아이들이 교사와 일대일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어 학습 능력이 높아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부 농촌학교 교사들의 안이한 태도도 문제지만, 롤모델과 경쟁, 협력의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부족한 것도 농촌학교 아이들 학습 부진의 큰 이유다. 취재 과정에서 중학교 아이들에게 친구가 60점을 받으면 자신은 70점만 받아도 1등이라는 말을 들었다. 농촌학교에 오는 교사들도 아이들 학습지도에 열의를 보이는 것 같지 않다는 게 학부모들의 일반적 평가다. 오지의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에게 가산점을 주던 제도가 없어지고 시골 학교들에는 초임 교사들의 발령이 늘었다는 학부모들의 불만도 있다.

정말 실력 있고 가르침에 열정적인 교사가 있는 학교를 선택해 아이들이 이동하며 배울 수 있게 하면 좋겠다. 게으른 교사들에게도 경각심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장승초등학교는 해마다 5,6학년 학생과 졸업생들이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다.


면 단위의 학교들이 그 효과가 지속적이지도 않고 실효성도 없는 농촌 유학에만 목매지 말고 저마다 특색 있는 교육 목표와 내용을 세워 학생을 유치해야 한다.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들이 혁신학교로 거듭나고, 새로운 교육철학으로 무장한 교사들이 나서서 학교를 살려낸 사례는 많다. 그 변화에는 지역 사람들과 학부모도 역할을 했지만, 중심에는 헌신적인 교사들이 있었다. 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세워내는 것은 결국 교사가 해야 할 일이다. 교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작은 학교 살리기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교사건, 일반 공무원이건 농촌 지역에 살지 않는 게 지역과 학교를 살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다가온다. 근무지에 살지 않는 교사와 공무원은 당연히 그 지역의 속사정을 알 수 없고 지역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길 수 없다는 걸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으로서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그 지역에 살아야 하고,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그 마을에 살아야 한다. 이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직업선택의 자유니 거주이전의 자유를 내세운다면 지역마다 조례를 제정해서라도 반드시 교사와 공무원이 해당 지역에 살게 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농촌 마을로 들어가 지역과 학교를 살리는 일에 앞장설 교사와 공무원을 우선해 뽑고 그들이 지역사회와 잘 협력할 수 있는 장치와 그들의 의견이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학교(교사)와 지역 사람, 학부모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의 특성을 살린 교육 내용을 세워가기 위해 퇴근 후 마을회관에 모여 토론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농촌 마을에 자원한 교사가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마음을 모아 지지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학교를 살려야 겠다는 필요를 느껴야 할 교사와 지역사회가 손 놓고 있는데 학교에 아이들이 시나브로 사라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진안 마령초등학교의 운동회


이런 생각이 현실이 되려면 일선 교사들의 의욕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먼저 지역의 교육정책을 세우는 도와 시, 군 교육청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교사들을 공문서 작성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소신껏 자신의 교육철학을 펼칠 수 있도록 권한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그 일을 수행할 교사가 필요하다면 그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충분한 동기부여를 주어야 한다. 교육감이 효율성을 앞세워 작은 학교 통폐합에만 마음을 쓰고 있다면 지금까지 한 말은 다 헛소리가 되고 말겠지만, 통폐합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시도를 해보고 결정해야 할 문제다.
전국의 초등학교 중 농촌학교의 폐교율이 85.6%라고 한다. 학교가 사라지면 농촌의 젊은 주민들은 더 이상 그곳에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읍내로 나가든지 도시로 나가야 한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도시 청년들의 귀농은 더 어려워질 테고.

작은 학교를 살리는 일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멸을 걱정하는 농촌 지역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진안의 면 단위 학교 중 학생 수가 가장 많은 장승초와 마령초는 혁신학교이고 조림초는 아토피 특화학교다. 교육의 내용이 교육수요자들이 학교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 수 있다. 교사와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해 더 새롭고 나은 교육 내용과 학습환경을 만들면 지역의 아이들이 떠나지 않을 것이고 도시의 아이들도 혁신적인 교육이 펼쳐지는 농촌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 작은 학교를 살리고, 지방의 소멸을 막는 길은 모두가 마음을 고쳐먹는 길밖에 없다.

 

이규홍 nogak1351@g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