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사회우리 동네에 올 송전탑 밀어내려고 옆 동네랑 피 터지게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 동네에 올 송전탑 밀어내려고 

옆 동네랑 피 터지게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월간광장 이규홍 nogak1351@gmail.com



9월24일 진안군 주천면 행정복지센터 강당에서 345,000V 신정읍-신계룡 송전선로 건설사업의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자신들에게 닥쳐올 위기를 감지하기 위해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주민이 설명회에 참여했다. 한전의 설명을 들은 주민들은 한전 측의 설명이 형식적이었고 주민들의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변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전은 23년 3월에 시작해 8월까지 ‘주민주도형 입지선정 용역’이라는 걸 실시했다. 그리고 5차례에 걸쳐 입지선정위원회를 열어 23년 12월에 ‘최적경과대역’을 결정했다. 먼저 여기서 드는 의문. ‘주민주도형’이라고 했는데 그 주민은 어느 주민을 말하는 건가? 정작 ‘최적경과대역’에 들어간 진안군의 주민들은 이 사실을 아무도 몰랐는데 말이다. 군에서 선정한 진안군 주민 대표 3명을 말하는 건가? 군수와 의원들은 분명히 3명의 주민 대표와 한전으로부터 설명을 들었을 텐데 최적경과대역 결정 사실은커녕 송전선로 건설 자체를 주민들은 1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몰랐다.

진안군의 대응책을 설명하던 담당 공무원도 주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소통하지 못한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정책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일정 기간 내부 논의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미리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송전선로가 지나고 송전탑이 주민들의 생활 공간에 세워지는 건 다른 문제다. 이 문제는 군수나 의회가 발생시킨 것이 아니지 않은가? 처음부터 모든 진행 과정을 공개하고 직접 피해를 당할 군민의 뜻을 물었어야 한다. 애초에 군민을 무시한 행태라고 밖엔 볼 수 없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진안군 의회의 입장을 대변한 동창옥 군의회 의장은 “중부발전과 군으로부터 설명을 들어 알고는 있지만 최종노선이 확정되지 않아 의회가 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부발전으로부터 송전선로가 마을을 지나지 않고 산의 7~8부 능선을 지나가기 때문에 마을에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도 들었다고 했다. 최종 경로가 정해지고 나면 입장을 밝힌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송전선이 지방의 산과 들을 지나 수도권으로 가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국가에서 송전선로를 필요로 하는데 우리 마을로 안 지나가고 주민들 피해 없고 그러면 그것까지 우리가 막을 수는 없는 거다. 지난번에 의회 와서 (실무자들이) 다 보고했다. 그래서 우리도 좋다, 그럼 그렇게 가면 좋고 반드시 마을에서 시각적으로 안 보이게 가야 된다고 나도 분명히 이야기를 했다.” 

동창옥 의원의 말이 맞다. 나라에서 하는 일을 사람 수도 얼마 되지 않는 일개 군에서 어떻게 막을 것인가. 온 나라의 시민단체가 달라붙어 싸웠던 밀양에서도 못 막았는데.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 지역은 군민이 어떤 피해를 보든 말든 모두 손 놓고 국가가 하는 일에 박수나 쳐주면 된다. 한전과 국가로부터 무한 사랑받을 진안군 만세다.

 


송전선로 건설을 위한 진안군 대표 입지선정위원이 어떻게 선정됐는지, 입지 선정을 위한 회의는 어떻게 진행되었고 송전선의 최종 경과 대역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진안군도 한전도 과정을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 어차피 법이 정해놓은 형식을 채우기 위해 한전의 전문가들이 얼마나 공들여 기술적으로 했을 것인가. 과정에 위법의 자국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책임 질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다만 최적 경과 대역이 왜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과 산으로 지나야 하고 우리는 손 놓고 그것을 바라봐야 하는지 주민들은 화가 날 뿐이다.


 


누구를 위한 개발이고 건설인가

전남 신안과 전북 서남권의 해상 풍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양이 10기가를 넘고 있다. 1기가는 원자력발전소 하나가 생산하는 에너지의 양이다. 원자력발전소 10기에 맞먹는 이 막대한 양의 전기를 다른 곳으로 빼내지 않으면 전체 전력망에 심각한 장애가 올 수 있다고 한다. 모르는 사이에 급성장한 우리나라 재생에너지의 생산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생산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안을 미리 고민하지 않은 관련 당국의 무능함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전은 국가 전력망 안정화를 위해서는 전기의 수요와 공급을 맞춰야 하고 그를 위해 송전선로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민설명회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한전의 간부가 그럴듯한 논리로 설명을 이어갔지만, 그에게 뒤지지 않는 논리로 주민들도 맞섰다. 

“제가 해석하기로는 한전의 (경과대역)선호도 조사라고 하는 게 인구가 가장 적고 반발이 가장 적을 지역을 선택해서 골랐다는 것으로 이해가 돼요. 금남, 호남정맥 7부 능선 아래의 마을들로 대역은 이미 정해졌고, 그 좁은 구역 안에서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자체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라는 것밖에 안 되는 겁니다.”(주천면 임준연 씨)

 설명회 도중 한 나이 든 주민이 누가 들을세라 속엣말로 내놓은 수군거림이 무릎을 치게 했다.

“아, 전기가 필요한 놈들이 발전소 옆으로 내려오면 될 것이지 뭐하러 쓰잘데없시 돈 쳐들여가메 촌사람들 가슴에 못 박어가메 그 멀리까지 전기를 끌어간디야.”

 


지산지소(地産地消)라는 말이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뜻이다. 전기라고 예외일 필요는 없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전기는 더 많이 더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전기의 경쟁력이 산업의 경쟁력이 된 세상이다. 재생에너지의 중요성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에 따른 해법은 정치인들의 셈법과 지역 이기주의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이미 우리나라의 전략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지만 거기에 초거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까지 가세할 태세다. 그럼, 전기는? 어디에서?

전기 잡아먹는 하마인 초거대 규모의 데이터센터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수도권에서는 필요한 전기를 생산할 능력도 공간도 없다. RE-100을 충족하기 위한 재생에너지는 더욱 그렇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남과 영남 등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선로의 개발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고 초고압 송전선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갈 지방 주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해결책은 하나고 간단하다.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기업이 전기를 생산하는 지방으로 내려오면 된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아름다운 과제도 덩달아 풀 수 있고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의 경제도 살아날 기회가 된다. 지역의 정치인들이 집중해야 할 것이 이런 일이 아닐까?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 없으면 송전탑쯤 그냥 눈감아주자는 말이나 하고 앉았을 때가 아니다. 옆 동네랑 힘겨루기나 해서 우리 동네에 고압선 안 지나가게 싸우고나 있을 일이 아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이 좋은 일을 왜 안 한단 말인가. 참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