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동안 옷 지어 입기
부산온배움터 바느질 수업 수강생 살구
옷 짓는 첫날
내 동무 지영 언니는 우리 마을에서 늘 누구보다 빠르게 좋은 것들을 내게 날라다 준다. 기막히게 맛난 음식, 가슴 울리는 좋은 책, 혼자 듣기 아까운 강의나 음악 따위를, 누구보다 앞서 전해주고 안겨다 준다. 그래서 이번에 언니가 함께 철릭 원피스 만들자, 이야기했을 때 일정 맞추는 거 말고는 별다른 고민 없이 같이하겠다 답했다.
옷 짓는 첫날 일정은 내 몸 치수를 재는 일과 옷감 뜨러 진시장에 가는 것이다. 치수를 재어서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지어 입는다니! 그동안 내게 옷은 사 입는 것이지, 짓는 게 아니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스웨터나 조끼를 떠준 일은 있지만, 내 손으로 내 옷을 만들어 입는 건 정말 난생처음이다.
평소에는 잴 일 없었던 가슴둘레와 팔길이, 어깨너비, 등길이, 허리둘레, 뒷목점에서 내 종아리까지의 길이를 구석구석 재었다. 키나 몸무게, 나이, 시력 말고는 내 몸과 관련된 숫자는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치수를 잴 때마다 내 몸 여기저기를 새로이 발견하는 기분이다. 내 뒷목점이 여기 있구나! 80A, 90B 따위로 끼워 맞춰 왔던 가슴둘레가 아니라 모두 다르게 봉긋한 가슴을 가지고 있구나! 나는 옆으로 허리가 길구나! 어깨가 정말 딱 벌어졌구나!
마흔 해 넘게 이 몸으로 살아왔는데, 아직도 나는 내 몸을 참 모른다. 치수를 재며 몸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를 대접해 주는 기분이다. 정해져 있는 크기에 맞춰서 옷을 입는 게 아니라, 내 몸에 맞춰 옷을 입는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쫙 펴지고, 등뼈가 곧추서고 턱이 살짝 들린다. 아침 출근길 급하게 허겁지겁 옷을 걸치던 때와는 천지 차이다. 마음이 당당해진달까?

재어둔 치수들을 바탕으로 옷본을 그렸다. 저고리 제도를 하는데 그려야 하는 옷본만 해도 여러 장이다. 뒤판, 앞판, 곁마기, 당, 소매, 수구(소매 끝동) 따위를 하나, 하나 그렸다. 선생님이 미리 밖에서 구해 오신 철 지난 포스터 위에 미리 그려둔 옷본을 붙이니 당장 옷 몇 벌은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든든하다. 이 옷본만 있으면 이제 몇 벌이고 문제없다, 고 이때는 생각했다.
옷본을 다 그리고 점심 먹은 후 옷감을 끊으러 진시장에 갔다. 자유롭게 진시장을 둘러보다 세 시쯤 18호 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언니와 나는 선생님이 일러주신 가게 세 곳을 둘러보며 미리 마음에 드는 천을 찜해 두었다. 시어머니가 가끔 진시장에서 뜬 천으로 딸아이 이불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 어머니 옷도 지어 입으셔서 어떤 곳인지 궁금했는데 한 번도 제대로 둘러볼 기회가 없었다. 잠깐 둘러보았는데도 완전히 다른 세상 같다. 나중에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께 들었는데, 2층에서 천을 고르면 3층에서 옷을 지어주기도 한단다. 지금처럼 쉽게 옷을 사 입고 또 싫증이 나면 쉽게 버리는 세상에, 정성스레 옷감을 골라서 내 몸에 맞게 지어주는 사람들이, 그걸 지어 입겠다는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다. 참말 새 세상이 맞다. 주로 옷감 천은 인터넷에서 샀는데 직접 만져보고 내 몸에 둘러보며 천을 고르니 그 맛이 쏠쏠하다. 고름으로 쓸 천, 곁마기로 들어갈 천, 당으로 쓸 천을 이야기하며 옷감을 고르자니, 치수 재며 쳐들렸던 고개가 더 위로 향하고, 콧대도 높아지는 듯하다.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으로 의기양양하게 들어서는 기분이다. 앞으로 이 콧대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고개가 아래로, 아래로 향하는 시간이 앞에 놓인 건 상상도 못 한 채 옷감 네 마 반, 자신감 마흔 마 반을 끊어 집으로 돌아갔다.
나, 이제 진시장에서 옷감 끊어 옷 지어 입는 사람이다. ^-^ (24.1.3.)
옷 짓는 둘째 날
둘째 날은 옷본을 천에 옮겨 그려서 자르는 마름질을 하는 날이다. 내가 가장 머리를 싸매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확하게 그린다고 애썼는데도 마름질을 하고 나면 천 성질에 따라 시접이 늘어나 있기도 하고, 다림질을 꼼꼼히 안 해 두면 접혀 있던 부분을 뒤늦게 발견해 천 위에 온갖 선들이 난무하는 때이기도 하다. 어제와 달리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천을 펼쳤다. 함께 옷을 만드는 아홉 선생님 모두 교실 바닥 가득 천을 펼쳐 마름질할 준비를 한다.
근데, 아 천들이 어찌나 고운지 자꾸 매만지게 된다. 어제 시장에서 천 고를 때도 어떤 빛 아래에서 보느냐에 따라, 어떤 필에서 풀려나왔는지에 따라 천 빛깔이 오묘하게 달라서 감탄이 나왔는데, 이렇게 나란히 펼쳐 놓으니 내 천만 보던 때와는 또 다르다. 서로 어우러져 새 얼굴로 옷감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이제 우리를 어떻게 할 건가요?’
설레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천을 마주하고 있으니, 마름질에 대한 부담이 좀 옅어진다.
선생님 도움으로 최대한 천이 덜 버려지도록 옷본을 대어 잘라냈다. 무얼 배울 때 가장 기쁜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배우고자 한 것 말고 생각도 못 한 것들을 더 배우는 것이다. 옷 만드는 기술 말고도, 천을 귀하게 여기고 아껴서 마름질하며 한 조각의 천이라도 더 살리려는 마음을 새로이 선생님께 배운다. 가위질 한 번만 조심스레 해도, 긴 천 하나를 건져낼 수 있다. 그럼, 거기다가 옷고름도 그리고 깃도 그린다. 그러면 반대쪽 넓은 천을 온전하게 다른 데 쓸 수 있다. 아이 어렸을 때부터 십 년 동안 놀이 삼아 바느질을 해 왔지만, 오늘처럼 천을 귀하게 다룬 적은 처음이다.

치마부터 시작해 저고리와 곁마기, 당, 소매, 수구, 요선 따위의 마름질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바느질을 시작한다.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시면 그대로 한 단계씩 따라가 본다. 유튜브나 설명서를 보고 혼자서 만들 때와는 정말 다르다. 다시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도와주시긴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 설명을 들으며 저고리 전체 모양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그려내지 않으면 바느질이 쉽지 않다. 그러니까 왜 저곳을 저렇게 바느질해야 하는지 내가 완전히 이해되어야 첫 바늘땀이 경쾌하고 즐겁다. 뒷길 등솔(등 가운데 부분)을 잇는데 내 등이 따뜻하다. 곁마기와 당을 시침질할 때는 이 저고리 입고 팔 벌려 뛰기도 문제없겠다 싶어 벌써부터 팔이 펄럭펄럭한다. 요선(허리둘레선)을 잇고 있자니, 벌써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치마가 저고리에 찰싹 붙었다. 다음으로 소매 어깨선을 앞판, 뒤판에 붙인다. 민소매 입다가 긴 팔 입은 듯 어깨가 덜 시리다. 마지막으로 저고리 한 부분, 한 부분을 이어갈 때마다 옷을 한 조각씩 입어나가는 듯하다.
어느 정도 저고리 모양이 만들어졌을 때 선생님이 지영 언니를 앞에 불러 말씀하셨다.
“자, 이제 옷에 몸을 담아 보세요.”
입는 게 아니라 ‘담아 보라’니. 참 근사한 말이다. 내 몸을 덮는 천 조각이 아니라, 내 몸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옷이라 생각하니 옷의 품격이 올라간다. 이런 게 바로 명품이 아니겠나.
오늘 또 새로이 배운 건, ‘시접’을 향한 마음이다. 그동안 ‘시접’은 내게 안전지대 같은 거였다. 완성선이 좀 어긋나도 시접에서 좀 당겨서 쓰면 되니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려 늘 정해진 치수보다 더 넉넉하게 시접을 두어왔다. 그런데 바느질하다 보니, 시접이 정확하면 바느질이 정말 편했다. 바느질하며 안감, 겉감의 완성선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수고도 덜 수 있었다. 시접을 넉넉히 하며 불안을 미루어 두는 방법 말고, 처음부터 꼼꼼히 마름질해서 불안을 없애는 방법을 새로이 익혔달까?
그것뿐인가. 오늘은 새로운 말도 많이 배웠다. 곁마기, 당, 수구, 요선, 앞길, 뒷길, 등솔, 겉섶, 칼깃처럼 새로운 세상의 말도 배웠다. 옷 짓는 법 배우러 왔는데, 새 세상을 배워 가고 덩달아 그 나라 말도 배워 간다. 올해 목표가 ‘안 해 본 일 하기’인데, 새해 첫 주부터 안 해 본 말도 잔뜩 배우고 몰랐던 세상도 알아간다. (24.1.4.)

옷 짓는 셋째 날
오늘은 소매 끝동도 달고, 곁마기와 당도 붙이고 옆선도 이었다. 고름도 미리 만들어 두었다. 천 고를 때 곁마기, 당, 고름 색으로 무얼 할까 즐거운 고민을 했는데 겨자색으로 붙여 두니 참 잘 어울린다. 튀는 걸 싫어해서 모두 같은 색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선생님들이 그러지 말라 하셔서 조금 용기를 내 보았더니 참 보기 좋다. 조금 밋밋하다 싶으면 장신구로도 새로운 느낌을 낼 수 있다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사극에서 장신구를 잔뜩 하고 나오는 여인네들을 떠올려 본다. 그때는 장신구가 뭐 그리 새로운 느낌을 줄지 싶었는데, 막상 그걸 걸친 내 모습을 생각하니 참말 화려하기 그지없다. 철릭 입고 노리개 달고 비녀 꽂고 출근하는 나를 상상해보다 그만 눈을 질끈 감는다. 곁마기, 당, 고름 색깔 달리한 것만으로도 참 애썼다 싶다.
저고리가 어느 정도 완성된 뒤에는 앞뒤 판에 요선을 붙였다. 허리선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도 중심 부분과 기점마다 미리 가위집을 내 두어서 큰 걱정은 없다. 몇 차례 이 수업을 여신 손완옥 선생님은 때마다 새로운 방법, 더 쉬운 방법, 새로운 느낌이 나게 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계신다. 그래서 여러 번 수업을 함께 한 선생님들도 전과 다른 공정이나 방법으로 바느질을 하며 새로운 것을 익혀 가서 좋다 했다. 거기다 늘 뒤에 해야 할 작업을 미리 염두에 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덕분에, 혼자 바느질할 때보다 시행착오가 훨씬 적다. ‘아, 이래서 아까 그 작업을 했구나.’를 여러 번 되뇌었다.
그리고 뒷솔 이을 때 ‘꼬집’해 준 부분을 고려해서 앞섶 부분에 치수를 아주 약간 늘리고 아래를 둥글렸는데 예전 같으면 저렇게까지 세심하게 해야 하나 싶어 슬쩍 생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몰라도 나만 아는 이런 정성이 이 옷을 향한 애정을 배로 만들어 주겠다 싶다. 딸아이 머리 묶어줄 때랑 비슷하다. 다른 이들은 모를, 삐져나온 잔머리에 핀을 꽂아줄 때의 마음이랄까. 아이를 향한 내 사랑의 징표 같은 거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 그리신 부분이 잘 생각나지 않는 것이 매우 안타까우나, 월요일에 꼭 내 옷에 저 한 꼬집의 사랑을 뿌려두리라 마음먹는다.
마지막으로 치마, 드디어 치마를 만든다. 오늘은 호주머니 만들고 아랫단 접는 것까지 익혔다. 호주머니는 정말 처음 만들어 본다. 오버록(휘갑치기) 대신 끝단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도, 하나씩 이어갈 때마다 정말 내 손이 들어갈 수 있는 호주머니가 만들어지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재봉틀이나 오버록 기계로 하면 오히려 더 번거롭고 지저분하기에, 오직 내 손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쓸모 있는 내 손이 참말 자랑스러운 때다.
이제 주말 동안 완전하게 요선을 저고리에 잇고, 호주머니 두 짝을 모두 달고, 치마 옆선을 다 잇고, 주름을 잡고, 밑단을 공그르기하고, 안감 당을 달고 옆선도 잇고 해야 하지만, 나는 괜찮다. 자신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밝은 미래를, 옷 짓기 여정의 행복한 결말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부산 온 배움터 게시판을 가득 채운, 자기가 지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선생님들 사진이 있어서 걱정 없다. 아마도 어떻게든 우리는, 다음 주 화요일에 철릭 원피스를 입고 자랑스레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을 테니까. (24.1.5.)

옷 짓는 넷째 날
수, 목, 금요일 수업을 하고 숙제를 짊어지고 왔다. 주머니 시접 정리, 치마 옆선 박기, 치마 밑단 정리하기, 저고리와 요선 잇기, 주름 잡기까지 해야 했다. 주머니 만들기는 처음이지만, 다른 것들은 예전에 아이 옷 만들어 줄 때 해 본 것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요일 종일 바느질을 하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해온 바느질 가운데 제대로 된 게 없었다. 한 번도 요선(허리선)을 따로 만들어 붙인 일도 없었고, 시접을 쌈솔(감싸서 처리하는 법)로 해 본 일도 없다. 대충 재봉틀에서 오버록 모양 나오는 바느질 버튼을 눌러 드르륵 박기만 하면 되었다. 올이 좀 풀려도 그러려니 했는데, 손바느질로 하다 보니 ‘그러려니’ 할 수가 없었다. 겉보다 더 정성 들여 속에 있는 시접들을 꼼꼼히 바느질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기쁜 마음이 올라왔다. 속 바느질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속 시접은 옷을 입고 벗으며 오롯이 나만 볼 수 있는 곳이다. 속 바느질이 잘되어야 옷을 입어도 까끌까끌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꼼꼼한 속 바느질은 누구보다 내가 오래도록 편하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모두 나를 잘 대해주는 바느질이다. 그러니 힘들긴 해도 아니 즐거울 수가 없다.
지치는 줄 모르고 숙제를 다 해갔다. 하지만 알고 보니 요선과 저고리를 잘못이어서 다시 뜯어서 붙여야 했고, 치맛주름은 겉주름 폭인 2.5cm로 안 나누고 3cm로 나누는 바람에 다시 수십 개의 시침핀을 뽑아내고 다시 잡아야 했다.
혼자 바느질을 하며 ‘완성’에 목적을 두었다면, 어떻게든 다시 안 하려고, 빨리 만들려고 꼼수를 부렸을 게다. 하지만 ‘배움’에 마음이 가 있으니 실을 다 뜯어내는 데도 마음이 좋았다. 그리고 뜯어보니 그제야 깃이 달릴 부분부터 요선 아래까지 날렵하게 내려오는 곡선이 보였다. 주름도 훨씬 가지런하게 잡혔음은 물론이다. 잘못하는 바람에, 틀리는 바람에, 그 바람 따라 좋은 배움에 이른 셈이다. 좀 더디어도 괜찮으니 남은 시간도 이렇게 틀리면 다시, 덕분에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 (24.1.8.)
옷 짓는 마지막 날
닷새 만에 옷 한 벌을 만들 수 있을까, 긴가민가했는데 다섯째 날에 이르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깃과 고름 빼고는 거의 다 완성했다. 몸에 툭 걸쳐 보니 철릭 원피스 맞다. 내가 만든 게 철릭 원피스가 맞다. 남은 공정이 얼마 안 된다 싶으니, 마음에 여유가 찾아와서일까, 선생님 하시는 말씀에서 단어 하나하나가 새로이 들린다.
안내 바느질, 맞바느질, 딱 단추 같은 단어들은 선생님이 새로이 만드신 말들인데 참말 딱 맞는 단어들이다. 깃을 다는 작업처럼 섬세한 공정에서 '안내 바느질'이 없었더라면 분명 엉뚱한 곳으로 바느질이 이어졌을 거다. 우리를 가르치고 도와주시는 손완옥 선생님과 다른 세 분 선생님이 우리에겐 어쩜 ‘안내 바느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서 바늘땀을 보고 있자니, 이 옷 한 벌에 이 자리에 있는 동무들이 다 있다. 바느질 한 땀으로는 치렁치렁 무거운 치마를 절대 저고리에 붙들어 맬 수 없다. 한 땀 바로 옆에 다른 한 땀만 더 떠도 실이 바늘을 붙드는 힘이 세 배, 네 배는 커진다. 혼자였다면 결코 오늘까지 못 왔을 텐데 함께 하는 지영 언니와 다른 동무 선생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서로를 붙들어 주는 바늘땀이 되어 닷새를 이어온 거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이 옷 한 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연수 이수증을 받는데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지난 한 해 일터에서 힘든 일을 겪었다. 심한 마음 앓이를 하며 나는 가장 만만한 나를 매섭게 몰아붙이고 팽개쳤다. 원망과 분노를 쏟아낼 곳이 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니 연말에 기운이 쏙 빠졌었는데 올해는 시작부터 나를 대접해 주는 일을 했다. 내 몸에 꼭 맞은 옷을 만들기 위해, 오롯이 나를 위해 밤잠을 안 자고 애썼다. 바늘땀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몇 번이고 다시 뜯어 바느질을 했다. 아무도 모를 나만 아는 구석 바느질도 꼼꼼히 했고, 겉에서 안 보이는 속 바느질에도 온 정성을 다했다. 내가 불편함이 없도록, 내가 예뻐 보이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만든 옷을 입으니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마지막 수업 날 저녁, 지영 언니랑 이야기했다. 다음엔 화사한 꽃무늬로 한 번 더 만들자고, 조끼도 몇 벌 더 만들자고. 만들어서 누구 줄 옷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대접하고 아껴주는 마음을 담아 만들 옷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시작이 좋다. (24.1.9.)

글쓴이 / 김구민 (살구)
저서 / ‘처음 해 보는 엄마’ (양철북)
어린이 동시 잡지 ‘올챙이 발가락’ 편집장
초등학교 교사
닷새 동안 옷 지어 입기
부산온배움터 바느질 수업 수강생 살구
옷 짓는 첫날
내 동무 지영 언니는 우리 마을에서 늘 누구보다 빠르게 좋은 것들을 내게 날라다 준다. 기막히게 맛난 음식, 가슴 울리는 좋은 책, 혼자 듣기 아까운 강의나 음악 따위를, 누구보다 앞서 전해주고 안겨다 준다. 그래서 이번에 언니가 함께 철릭 원피스 만들자, 이야기했을 때 일정 맞추는 거 말고는 별다른 고민 없이 같이하겠다 답했다.
옷 짓는 첫날 일정은 내 몸 치수를 재는 일과 옷감 뜨러 진시장에 가는 것이다. 치수를 재어서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지어 입는다니! 그동안 내게 옷은 사 입는 것이지, 짓는 게 아니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스웨터나 조끼를 떠준 일은 있지만, 내 손으로 내 옷을 만들어 입는 건 정말 난생처음이다.
평소에는 잴 일 없었던 가슴둘레와 팔길이, 어깨너비, 등길이, 허리둘레, 뒷목점에서 내 종아리까지의 길이를 구석구석 재었다. 키나 몸무게, 나이, 시력 말고는 내 몸과 관련된 숫자는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치수를 잴 때마다 내 몸 여기저기를 새로이 발견하는 기분이다. 내 뒷목점이 여기 있구나! 80A, 90B 따위로 끼워 맞춰 왔던 가슴둘레가 아니라 모두 다르게 봉긋한 가슴을 가지고 있구나! 나는 옆으로 허리가 길구나! 어깨가 정말 딱 벌어졌구나!
마흔 해 넘게 이 몸으로 살아왔는데, 아직도 나는 내 몸을 참 모른다. 치수를 재며 몸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를 대접해 주는 기분이다. 정해져 있는 크기에 맞춰서 옷을 입는 게 아니라, 내 몸에 맞춰 옷을 입는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쫙 펴지고, 등뼈가 곧추서고 턱이 살짝 들린다. 아침 출근길 급하게 허겁지겁 옷을 걸치던 때와는 천지 차이다. 마음이 당당해진달까?
재어둔 치수들을 바탕으로 옷본을 그렸다. 저고리 제도를 하는데 그려야 하는 옷본만 해도 여러 장이다. 뒤판, 앞판, 곁마기, 당, 소매, 수구(소매 끝동) 따위를 하나, 하나 그렸다. 선생님이 미리 밖에서 구해 오신 철 지난 포스터 위에 미리 그려둔 옷본을 붙이니 당장 옷 몇 벌은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든든하다. 이 옷본만 있으면 이제 몇 벌이고 문제없다, 고 이때는 생각했다.
옷본을 다 그리고 점심 먹은 후 옷감을 끊으러 진시장에 갔다. 자유롭게 진시장을 둘러보다 세 시쯤 18호 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언니와 나는 선생님이 일러주신 가게 세 곳을 둘러보며 미리 마음에 드는 천을 찜해 두었다. 시어머니가 가끔 진시장에서 뜬 천으로 딸아이 이불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 어머니 옷도 지어 입으셔서 어떤 곳인지 궁금했는데 한 번도 제대로 둘러볼 기회가 없었다. 잠깐 둘러보았는데도 완전히 다른 세상 같다. 나중에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께 들었는데, 2층에서 천을 고르면 3층에서 옷을 지어주기도 한단다. 지금처럼 쉽게 옷을 사 입고 또 싫증이 나면 쉽게 버리는 세상에, 정성스레 옷감을 골라서 내 몸에 맞게 지어주는 사람들이, 그걸 지어 입겠다는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다. 참말 새 세상이 맞다. 주로 옷감 천은 인터넷에서 샀는데 직접 만져보고 내 몸에 둘러보며 천을 고르니 그 맛이 쏠쏠하다. 고름으로 쓸 천, 곁마기로 들어갈 천, 당으로 쓸 천을 이야기하며 옷감을 고르자니, 치수 재며 쳐들렸던 고개가 더 위로 향하고, 콧대도 높아지는 듯하다.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으로 의기양양하게 들어서는 기분이다. 앞으로 이 콧대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고개가 아래로, 아래로 향하는 시간이 앞에 놓인 건 상상도 못 한 채 옷감 네 마 반, 자신감 마흔 마 반을 끊어 집으로 돌아갔다.
나, 이제 진시장에서 옷감 끊어 옷 지어 입는 사람이다. ^-^ (24.1.3.)
옷 짓는 둘째 날
둘째 날은 옷본을 천에 옮겨 그려서 자르는 마름질을 하는 날이다. 내가 가장 머리를 싸매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확하게 그린다고 애썼는데도 마름질을 하고 나면 천 성질에 따라 시접이 늘어나 있기도 하고, 다림질을 꼼꼼히 안 해 두면 접혀 있던 부분을 뒤늦게 발견해 천 위에 온갖 선들이 난무하는 때이기도 하다. 어제와 달리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천을 펼쳤다. 함께 옷을 만드는 아홉 선생님 모두 교실 바닥 가득 천을 펼쳐 마름질할 준비를 한다.
근데, 아 천들이 어찌나 고운지 자꾸 매만지게 된다. 어제 시장에서 천 고를 때도 어떤 빛 아래에서 보느냐에 따라, 어떤 필에서 풀려나왔는지에 따라 천 빛깔이 오묘하게 달라서 감탄이 나왔는데, 이렇게 나란히 펼쳐 놓으니 내 천만 보던 때와는 또 다르다. 서로 어우러져 새 얼굴로 옷감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이제 우리를 어떻게 할 건가요?’
설레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천을 마주하고 있으니, 마름질에 대한 부담이 좀 옅어진다.
선생님 도움으로 최대한 천이 덜 버려지도록 옷본을 대어 잘라냈다. 무얼 배울 때 가장 기쁜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배우고자 한 것 말고 생각도 못 한 것들을 더 배우는 것이다. 옷 만드는 기술 말고도, 천을 귀하게 여기고 아껴서 마름질하며 한 조각의 천이라도 더 살리려는 마음을 새로이 선생님께 배운다. 가위질 한 번만 조심스레 해도, 긴 천 하나를 건져낼 수 있다. 그럼, 거기다가 옷고름도 그리고 깃도 그린다. 그러면 반대쪽 넓은 천을 온전하게 다른 데 쓸 수 있다. 아이 어렸을 때부터 십 년 동안 놀이 삼아 바느질을 해 왔지만, 오늘처럼 천을 귀하게 다룬 적은 처음이다.
치마부터 시작해 저고리와 곁마기, 당, 소매, 수구, 요선 따위의 마름질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바느질을 시작한다.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시면 그대로 한 단계씩 따라가 본다. 유튜브나 설명서를 보고 혼자서 만들 때와는 정말 다르다. 다시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도와주시긴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 설명을 들으며 저고리 전체 모양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그려내지 않으면 바느질이 쉽지 않다. 그러니까 왜 저곳을 저렇게 바느질해야 하는지 내가 완전히 이해되어야 첫 바늘땀이 경쾌하고 즐겁다. 뒷길 등솔(등 가운데 부분)을 잇는데 내 등이 따뜻하다. 곁마기와 당을 시침질할 때는 이 저고리 입고 팔 벌려 뛰기도 문제없겠다 싶어 벌써부터 팔이 펄럭펄럭한다. 요선(허리둘레선)을 잇고 있자니, 벌써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치마가 저고리에 찰싹 붙었다. 다음으로 소매 어깨선을 앞판, 뒤판에 붙인다. 민소매 입다가 긴 팔 입은 듯 어깨가 덜 시리다. 마지막으로 저고리 한 부분, 한 부분을 이어갈 때마다 옷을 한 조각씩 입어나가는 듯하다.
어느 정도 저고리 모양이 만들어졌을 때 선생님이 지영 언니를 앞에 불러 말씀하셨다.
“자, 이제 옷에 몸을 담아 보세요.”
입는 게 아니라 ‘담아 보라’니. 참 근사한 말이다. 내 몸을 덮는 천 조각이 아니라, 내 몸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옷이라 생각하니 옷의 품격이 올라간다. 이런 게 바로 명품이 아니겠나.
오늘 또 새로이 배운 건, ‘시접’을 향한 마음이다. 그동안 ‘시접’은 내게 안전지대 같은 거였다. 완성선이 좀 어긋나도 시접에서 좀 당겨서 쓰면 되니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려 늘 정해진 치수보다 더 넉넉하게 시접을 두어왔다. 그런데 바느질하다 보니, 시접이 정확하면 바느질이 정말 편했다. 바느질하며 안감, 겉감의 완성선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수고도 덜 수 있었다. 시접을 넉넉히 하며 불안을 미루어 두는 방법 말고, 처음부터 꼼꼼히 마름질해서 불안을 없애는 방법을 새로이 익혔달까?
그것뿐인가. 오늘은 새로운 말도 많이 배웠다. 곁마기, 당, 수구, 요선, 앞길, 뒷길, 등솔, 겉섶, 칼깃처럼 새로운 세상의 말도 배웠다. 옷 짓는 법 배우러 왔는데, 새 세상을 배워 가고 덩달아 그 나라 말도 배워 간다. 올해 목표가 ‘안 해 본 일 하기’인데, 새해 첫 주부터 안 해 본 말도 잔뜩 배우고 몰랐던 세상도 알아간다. (24.1.4.)
옷 짓는 셋째 날
오늘은 소매 끝동도 달고, 곁마기와 당도 붙이고 옆선도 이었다. 고름도 미리 만들어 두었다. 천 고를 때 곁마기, 당, 고름 색으로 무얼 할까 즐거운 고민을 했는데 겨자색으로 붙여 두니 참 잘 어울린다. 튀는 걸 싫어해서 모두 같은 색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선생님들이 그러지 말라 하셔서 조금 용기를 내 보았더니 참 보기 좋다. 조금 밋밋하다 싶으면 장신구로도 새로운 느낌을 낼 수 있다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사극에서 장신구를 잔뜩 하고 나오는 여인네들을 떠올려 본다. 그때는 장신구가 뭐 그리 새로운 느낌을 줄지 싶었는데, 막상 그걸 걸친 내 모습을 생각하니 참말 화려하기 그지없다. 철릭 입고 노리개 달고 비녀 꽂고 출근하는 나를 상상해보다 그만 눈을 질끈 감는다. 곁마기, 당, 고름 색깔 달리한 것만으로도 참 애썼다 싶다.
저고리가 어느 정도 완성된 뒤에는 앞뒤 판에 요선을 붙였다. 허리선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도 중심 부분과 기점마다 미리 가위집을 내 두어서 큰 걱정은 없다. 몇 차례 이 수업을 여신 손완옥 선생님은 때마다 새로운 방법, 더 쉬운 방법, 새로운 느낌이 나게 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계신다. 그래서 여러 번 수업을 함께 한 선생님들도 전과 다른 공정이나 방법으로 바느질을 하며 새로운 것을 익혀 가서 좋다 했다. 거기다 늘 뒤에 해야 할 작업을 미리 염두에 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덕분에, 혼자 바느질할 때보다 시행착오가 훨씬 적다. ‘아, 이래서 아까 그 작업을 했구나.’를 여러 번 되뇌었다.
그리고 뒷솔 이을 때 ‘꼬집’해 준 부분을 고려해서 앞섶 부분에 치수를 아주 약간 늘리고 아래를 둥글렸는데 예전 같으면 저렇게까지 세심하게 해야 하나 싶어 슬쩍 생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몰라도 나만 아는 이런 정성이 이 옷을 향한 애정을 배로 만들어 주겠다 싶다. 딸아이 머리 묶어줄 때랑 비슷하다. 다른 이들은 모를, 삐져나온 잔머리에 핀을 꽂아줄 때의 마음이랄까. 아이를 향한 내 사랑의 징표 같은 거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 그리신 부분이 잘 생각나지 않는 것이 매우 안타까우나, 월요일에 꼭 내 옷에 저 한 꼬집의 사랑을 뿌려두리라 마음먹는다.
마지막으로 치마, 드디어 치마를 만든다. 오늘은 호주머니 만들고 아랫단 접는 것까지 익혔다. 호주머니는 정말 처음 만들어 본다. 오버록(휘갑치기) 대신 끝단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도, 하나씩 이어갈 때마다 정말 내 손이 들어갈 수 있는 호주머니가 만들어지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재봉틀이나 오버록 기계로 하면 오히려 더 번거롭고 지저분하기에, 오직 내 손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쓸모 있는 내 손이 참말 자랑스러운 때다.
이제 주말 동안 완전하게 요선을 저고리에 잇고, 호주머니 두 짝을 모두 달고, 치마 옆선을 다 잇고, 주름을 잡고, 밑단을 공그르기하고, 안감 당을 달고 옆선도 잇고 해야 하지만, 나는 괜찮다. 자신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밝은 미래를, 옷 짓기 여정의 행복한 결말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부산 온 배움터 게시판을 가득 채운, 자기가 지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선생님들 사진이 있어서 걱정 없다. 아마도 어떻게든 우리는, 다음 주 화요일에 철릭 원피스를 입고 자랑스레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을 테니까. (24.1.5.)
옷 짓는 넷째 날
수, 목, 금요일 수업을 하고 숙제를 짊어지고 왔다. 주머니 시접 정리, 치마 옆선 박기, 치마 밑단 정리하기, 저고리와 요선 잇기, 주름 잡기까지 해야 했다. 주머니 만들기는 처음이지만, 다른 것들은 예전에 아이 옷 만들어 줄 때 해 본 것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요일 종일 바느질을 하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해온 바느질 가운데 제대로 된 게 없었다. 한 번도 요선(허리선)을 따로 만들어 붙인 일도 없었고, 시접을 쌈솔(감싸서 처리하는 법)로 해 본 일도 없다. 대충 재봉틀에서 오버록 모양 나오는 바느질 버튼을 눌러 드르륵 박기만 하면 되었다. 올이 좀 풀려도 그러려니 했는데, 손바느질로 하다 보니 ‘그러려니’ 할 수가 없었다. 겉보다 더 정성 들여 속에 있는 시접들을 꼼꼼히 바느질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기쁜 마음이 올라왔다. 속 바느질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속 시접은 옷을 입고 벗으며 오롯이 나만 볼 수 있는 곳이다. 속 바느질이 잘되어야 옷을 입어도 까끌까끌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꼼꼼한 속 바느질은 누구보다 내가 오래도록 편하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모두 나를 잘 대해주는 바느질이다. 그러니 힘들긴 해도 아니 즐거울 수가 없다.
지치는 줄 모르고 숙제를 다 해갔다. 하지만 알고 보니 요선과 저고리를 잘못이어서 다시 뜯어서 붙여야 했고, 치맛주름은 겉주름 폭인 2.5cm로 안 나누고 3cm로 나누는 바람에 다시 수십 개의 시침핀을 뽑아내고 다시 잡아야 했다.
혼자 바느질을 하며 ‘완성’에 목적을 두었다면, 어떻게든 다시 안 하려고, 빨리 만들려고 꼼수를 부렸을 게다. 하지만 ‘배움’에 마음이 가 있으니 실을 다 뜯어내는 데도 마음이 좋았다. 그리고 뜯어보니 그제야 깃이 달릴 부분부터 요선 아래까지 날렵하게 내려오는 곡선이 보였다. 주름도 훨씬 가지런하게 잡혔음은 물론이다. 잘못하는 바람에, 틀리는 바람에, 그 바람 따라 좋은 배움에 이른 셈이다. 좀 더디어도 괜찮으니 남은 시간도 이렇게 틀리면 다시, 덕분에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 (24.1.8.)
옷 짓는 마지막 날
닷새 만에 옷 한 벌을 만들 수 있을까, 긴가민가했는데 다섯째 날에 이르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깃과 고름 빼고는 거의 다 완성했다. 몸에 툭 걸쳐 보니 철릭 원피스 맞다. 내가 만든 게 철릭 원피스가 맞다. 남은 공정이 얼마 안 된다 싶으니, 마음에 여유가 찾아와서일까, 선생님 하시는 말씀에서 단어 하나하나가 새로이 들린다.
안내 바느질, 맞바느질, 딱 단추 같은 단어들은 선생님이 새로이 만드신 말들인데 참말 딱 맞는 단어들이다. 깃을 다는 작업처럼 섬세한 공정에서 '안내 바느질'이 없었더라면 분명 엉뚱한 곳으로 바느질이 이어졌을 거다. 우리를 가르치고 도와주시는 손완옥 선생님과 다른 세 분 선생님이 우리에겐 어쩜 ‘안내 바느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서 바늘땀을 보고 있자니, 이 옷 한 벌에 이 자리에 있는 동무들이 다 있다. 바느질 한 땀으로는 치렁치렁 무거운 치마를 절대 저고리에 붙들어 맬 수 없다. 한 땀 바로 옆에 다른 한 땀만 더 떠도 실이 바늘을 붙드는 힘이 세 배, 네 배는 커진다. 혼자였다면 결코 오늘까지 못 왔을 텐데 함께 하는 지영 언니와 다른 동무 선생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서로를 붙들어 주는 바늘땀이 되어 닷새를 이어온 거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이 옷 한 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연수 이수증을 받는데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지난 한 해 일터에서 힘든 일을 겪었다. 심한 마음 앓이를 하며 나는 가장 만만한 나를 매섭게 몰아붙이고 팽개쳤다. 원망과 분노를 쏟아낼 곳이 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니 연말에 기운이 쏙 빠졌었는데 올해는 시작부터 나를 대접해 주는 일을 했다. 내 몸에 꼭 맞은 옷을 만들기 위해, 오롯이 나를 위해 밤잠을 안 자고 애썼다. 바늘땀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몇 번이고 다시 뜯어 바느질을 했다. 아무도 모를 나만 아는 구석 바느질도 꼼꼼히 했고, 겉에서 안 보이는 속 바느질에도 온 정성을 다했다. 내가 불편함이 없도록, 내가 예뻐 보이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만든 옷을 입으니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마지막 수업 날 저녁, 지영 언니랑 이야기했다. 다음엔 화사한 꽃무늬로 한 번 더 만들자고, 조끼도 몇 벌 더 만들자고. 만들어서 누구 줄 옷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대접하고 아껴주는 마음을 담아 만들 옷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시작이 좋다. (24.1.9.)
글쓴이 / 김구민 (살구)
저서 / ‘처음 해 보는 엄마’ (양철북)
어린이 동시 잡지 ‘올챙이 발가락’ 편집장
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