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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기

함께 사는 세상 / 발달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가기

함께 사는 세상

발달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가기

 

내 앞만 보고 살기에도 벅찬 우리는 남의 사정을 잘 모른다. 장애가 그렇다. 평생 장애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장애인과 맞닥뜨렸을 때 이쪽도 저쪽도 같이 당황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알고 나면 별것 아닌 걸 피차 사정을 잘 몰라 겪는 일일 게다. 

월간광장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비장애인과 우리 사회가 장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니까.

이번 호부터 심한 발달장애인 진태씨의 어머니 달팽이님1)이 아들과 살면서 겪은 소소한 일상을 담은 글을 싣는다. 달팽이님은 자신의 글이 다른 이들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세상살이에 불편을 겪는 아들의 어려움을 이웃들이 이해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달팽이님의 글이 읽다 보면 꽤 재미있다. / 월간광장 편집부

 

글과 사진 / 달팽이


 

설거지

                                                             

오늘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아들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다. 평소에 밥상 차리기, 빨래 널고 개기 등 집안일을 돕고 그 대가로 수요일과 금요일 아침에 용돈을 받아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 먹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장애인 주간 보호 시설을 이용하면서 진태와 내가 정한 것이다. 처음에는 녀석이 잘 해낼지 반신반의했지만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나를 빼닮은 녀석은 언제나 먹는 것에 진심인지라 조금 불만이 있어도 수긍하고 순순히 따라주는 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목요일 오후가 되면 머리를 감고, 면도하고 내일 들고 나갈 가방까지 챙겨 놓고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렸다. 기다리던 엄마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 금요일은 음료숫값 받아 가는 날! 내일은 금요일! 음료숫값 천 원, 밥값 천 원”을 외쳐대며 재빠르게 지갑을 들이밀었다. 전날 저녁부터 꽁지에 불붙은 닭처럼 보채는 진태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기다려 오늘은 목요일이니까 내일 아침에 줄 거야.”라며 난 우리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그러면 바로 녀석의 입에서 “안 먹는다. 안 먹는다.”가 무한 재생되기 시작한다. 안 먹는다는 말은 곧 화가 치밀었다는 표현이다. 이럴 땐 슬그머니 물러나 다시 이야기하는 게 상책이다. 

“그래 그럼 저녁밥 먹고 엄마가 설거지하고 줄게”라며 조곤조곤 설득하면 착한 진태는 이내 잠잠해진다. 그렇게 저녁 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빈 그릇을 정리하는데 바람처럼 싱크대 앞에 선 진태가 “진태는 설거지해요.”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누가?”하고 물었더니 비장한 눈빛으로 “진태는 설거지해요.” 

굳이 자기가 설거지를 하겠다며 비켜서질 않는다. 전에는 볼 수 없던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반갑든지 그 자리에서 덜컥 음료숫값과 밥값을 건네주었다. 

목적을 달성한 녀석은 헤벌쭉해진 얼굴로 벽을 짚더니 흐느적흐느적 춤을 추며 무아몽에 빠져들었다. 

“진태야 설거지는 안 하는 겨?” 더 이상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도 그렇게 내가 아들에게 조련당한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뭉근히 따뜻해진 침대 속을 파고들어 기분 좋은 잠을 청했다. 

 

 

네 마음을 알려줘

 

비지찌개를 맛깔나게 끓여 저녁상을 차렸다. 찌개가 끓는 내내 킁킁거리며 내 주위를 맴돌던 진태가 “비지찌개 먹어야 해. 그릇 놓아야 해요.”란다. 

애석하게도 내가 속이 좋지 않아 국대접을 한 개만 놓은 걸 보고 하는 말이었다. “진태야, 엄마는 배탈이 나서 저녁밥 안 먹을 거야”라고 했더니 “음” 짧은 한마디만 남기고 허겁지겁 저녁밥을 먹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에는 딱히 찬거리가 없었다. 냉동고 깊은 곳에서 무청 시래기를 꺼내 자박하게 끓여내고, 노릇노릇하게 스팸도 굽고, 배추쌈까지 준비해 아침상을 차렸다. 

언제나 그렇듯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는 모습을 보며 참견을 했다. “진태야, 스팸은 배추쌈에 싸서 먹어야지” 했더니 “아니 아니, 우거지 올리고 파김치 올리고 스팸도 올려서 먹어요.”라면서 시래기와 파김치를 보란 듯 소복이 올려 맛나게 먹는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그래! 그렇지! 너도 선택 할 수 있지! 습관처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헤아릴 수 없이 엄마가 참견질했구나. 무언가를 바랄 때 말로 풀기보다 자해를 선택했었다. 너는. 

하루하루가 아니, 순간순간이 교육이었다. 상황에 맞는 말을 가르치기 위해 상황을 연출해 행동으로 보여주고, 적절한 단어를 찾고 문장을 가르치기까지 몇 개월에서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손톱처럼 더디게 자라는 너지만 이마저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말로 표현하기에 벅차다. 엄마가 미련하게도 가랑비에 옷이 젖듯 너도 성장하고 있다는 걸 몰랐구나!

진태야, 앞으로도 “아니 나는 이렇게 할 거야”라고 해줘. 그렇게 네 마음을 알려줘.

 

 

엄마가 미안해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이다. 어제 털어내지 못한 피곤이 어깨 한가득 올라앉았다. 비몽사몽 침대에 걸터앉아 한참이나 꾸벅꾸벅 고갯짓을 한다. 묵직한 눈꺼풀을 들어 올려 하루를 열며 머릿속으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본다. 

겨우겨우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방으로 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아들이 좋아하는 두부찌개를 끓여 상을 차렸다. 

“아들 밥 먹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잘 잤어요!” 하며 내 어깨에 실망이 고개를 얹는다. 그 모양이 마치 곰돌이 푸 같다. 밤새 더 귀여워진 아들 덕에 눅진하게 들러붙은 피로감이 후드득 떨어진다. 

 

보람차게 아침 식사를 하고서 나설 채비를 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미안해!” 뭐지? 하는 마음에 “왜? 갑자기 엄마가 미안해야 해?” 물으니 “수영복 가방이 없어!”라고 말한다. 

“음 진태가 잃어버린 건데 엄마가 미안해야 하는 거구나! 그럼 같이 찾아볼까? ” 최대한 친절하게 말하고서 침대, 소파, 장식장 밑을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출근 시간이 지체되고 센터 차량이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 조바심이 났다. 지금은 바쁘니까 저녁에 다시 찾아보자고 했더니 또 “엄마가 미안해!” 한다. “왜 자꾸 엄마가 미안해야 해?” 짜증 섞인 말투로 쏘아붙였더니 나를 안아주면서 또 “엄마가 미안해!” 한다.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녀석은 계속 내게 사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 “네가 잘못한 일은 바로 사과해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그걸 잊지 않고 사과를 하는 진태에게 칭찬은 못 할망정 난 계속 쏘아붙이기만 했다. “아들, 엄마가 네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했지? 오늘 저녁에 닭발에 어묵 국물 어뗘?” 했더니 헤벌쭉한 얼굴로 ”닭발이가 좋아요“ 한다. 

진태야, 네 마음을 이해 못 해 엄마가 미안해!


1) 달팽이님은 2017년에 아들과 함께 울산에서 진안군 동향면으로 귀촌했다. 지금은 주천면의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