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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백의 썰이 빛나는 밤에] 앞뒤 없는 하늘에서 편히 쉬소서

앞뒤 없는 하늘에서 편히 쉬소서

 

이시백 / 이야기 보부상


나와 김민기는 한 하늘 아래 함께 숨을 쉬며 살았지만, 남들처럼 각별한 사연을 나눌 만한 교유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십대부터 그의 노래를 호흡처럼 부르며 살아온 세대로서 그는 동네 형처럼 친근하게 여겨졌지요. 행사장에서 두어 번 어깨너머로 본 적은 있지만, 이야기 한마디 나눠 본 적도, 그 특유의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노래로 만난 사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십대 끝무렵에 낙지골목이라 불리던 무교동 주점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낙지를 팔던 무교동이 난데없이 ‘양산박’이니, ‘원두막’이니 하는 토속적인 간판을 걸고 막걸리를 팔던 때였지요. 통기타와 생맥주와 포크송과 로보의 음악이 뒤섞여 그야말로 ‘융복합’의 절정을 이루던 그곳에서, 나는 기타를 메고 오디션을 거쳐 저녁에 두 차례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 무대에서 내가 ‘후로꾸’로 배운 기타를 튕기며 와들와들 떨며 부른 노래가 김민기의 ‘친구’였습니다.

 

당시 김민기의 노래는 몽땅 금지곡이었던 데다가 한창 막걸리에 흥이 난 손님들에게 대책 없이 비장한 가사와 음울한 선율을 지닌 ‘친구’라는 노래는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첫 무대가 끝난 뒤, 주점의 매니저 아저씨가 나를 불러서 다음부터는 곡을 바꾸라고 했지요. 그러나 나는 바꾸지 않고 줄곧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기타 코드를 잊지 않고 자신있게 부를 곡이 얼마 없는 데다가 방정맞은 로보의 노래를 부르기는 싫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매니저는 내게 디제이박스에 들어가 ‘빈대떡(음반)’이나 돌리게 했으며,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일까지 시켰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에 ‘가열차게’ 김민기의 ‘친구’를 불렀습니다. 결국 매니저는 내게 모든 손님이 집으로 돌아가서 썰렁하게 빈 마지막 십오 분 ‘스테이지’를 주었습니다. 통금이 임박하여 썰물처럼 손님들이 떠나고 만취하여 탁자에 엎어져 코를 고는 취객과, 종업원들이 빗자루로 쓰레기를 썩썩 소리내며 쓸고 있던 주점 안에서 나는 비장한 목소리로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을 음울한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결국 한 달도 채우지 못한 채, 나는 그 ‘흐린 주점’의 무대를 떠나 노래와 헤어지고 혐오하던 중년에 접어들 때가 되어서야, 그 노래가 김민기 가객이 경기고 3학년 때 북평으로 보이스카우트 야영을 갔다가 사고로 죽은 친구를 애도하여 지은 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 노래는 그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던 암울한 시절에 어디가 하늘인지, 물인지도 모를 만큼 수다한 사고를 겪으며 살아야 했던 세대를 애도하며 부른 노래가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할 뿐입니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스스로를 칭하여 일렀다는 ‘뒷것’이란 말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모두가 ‘앞것’이 되려고 가발도 쓰고, 탬버린도 치고, 심지어 손바닥에 ‘앞’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왕’ 자까지 적어대며 ‘난리부르스’를 추는 이 와중에 스스로 물러서 뒷것을 자처하는 이의 삶은 어떤 것일까. 고등학생 시절에 ‘친구’라는 곡을 지을 정도로 빼어난 재능을 지녔고, 내로라하는 ‘가방끈’을 지닌 그를 뒤로 물러서게 한 것은 무엇일까.

‘겸손’이나 ‘안분’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그 물음은 그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가셔지지 않습니다. 남을 밀치거나, 짓밟지 않으며, 차별 없는 ‘대동’의 가치라면, 굳이 ‘앞과 뒤’를 언급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호흡처럼 부르던 노래의 주인이 떠났습니다. 이제 그 ‘뒤’에 남겨진 이들은 그를 애도하며 ‘친구’를 부를 것입니다. 부디 그가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는지 물을 필요가 없는 곳에서 ‘앞뒤’ 없이 사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랜만에 골방에 처박혀 있던 기타를 꺼내 오래전에 부르던 그의 노래를 불러봅니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