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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백의 [썰이 빛나는 밤에] / 교회 오빠

[썰이 빛나는 밤에] 교회 오빠

이시백 / 이야기 보부상




십 대에 들어서며 교회는 나와 멀어졌습니다. 교회를 지나갈 때면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는 십 대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묘했습니다. 주인 곁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양 떼를 바라보는 늑대의 심경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눈부신 풍경이었습니다. 티 한 점 없이 목젖을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그들을 보며, 스스로의 어둠이 더욱 짙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빛의 아이들이었습니다. 내가 음습한 골목에 숨어 꼬바리를 빨 때, 교회 마당의 탁구대에서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그들은 마주보기 힘들 만큼 눈부신 풍경들이었습니다.

그때,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오랫동안 발을 끊었던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런 나를 본 친척 형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 여자애들 보러 왔지?”

정곡을 찔린 나는 얼굴을 붉힌 채 달아나듯 허겁지겁 교회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냥 어둠 속에 살기로 했습니다.

 

내 주변에는 ‘교회 오빠’들이 몇몇 있습니다. 대체로 내가 아는 교회 오빠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탁구를 잘 칩니다. 어둡던 시절에는 유치해 보이고, ‘애들이나 하는’ 놀이로 알았던 탁구의 실력자들이 꽤 있습니다. 탁구뿐이 아니라 여러 놀이를 잘 알고, 재미가 있습니다. 재미라고는 음담패설밖에 모르던 ‘어둠의 자식’들과는 류가 다른 놀이에 능통합니다. 남녀가 손뼉을 치며 춤을 추고, 무슨 ‘게임’이라는 것을 하는 모습을 나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요, 기껏해야 빈 술병을 돌려 벌로 술을 마시는 게 유일한 놀이였던 어둠의 자식들에게 그런 게임은 생경했지요.

 

교회 오빠들은 기타도 잘 칩니다. 기타를 못 치면 간첩이라 해서 남파 간첩들도 전석환의 ‘아름다운 노래 정든 그 노래가….’의 기타 코드를 배우고 온다던 시절이지만, 교회에서 갈고 닦은 교회 오빠들의 기타 실력은 탁월합니다.

기타뿐이 아니라 노래 실력도 출중합니다. 주일마다 성가대에서 익힌 찬송가 솜씨에 화음까지 넣어가며 제대로 된 노래를 불렀지요. ‘어둠의 자식’들이 술에 취해 악쓰며 부르던 ‘녹슬은 기찻길아’하고는 차원이 달랐지요.

그리하여 교회 오빠들은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던 7080세대의 포크싱어로 트윈폴리오를 비롯해 대중 가요계로 진출하게 됩니다. 이후 교회에는 밴드 바람이 불며, 성가대 옆에 드럼과 전기기타까지 갖춘 청년부 밴드들이 들어섭니다. 우리 록 음악의 1세대가 미8군 클럽이었다면, 교회는 그 2세대 밴드음악의 산실이 되었지요. 이어서 미국 교민의 자녀나 미국 유학을 다녀온 젊은이들이 홍대 앞의 클럽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니, 교회가 한류를 주도하는 k-pop의 기획사 역할까지 한 셈입니다.


 

한때 예배당을 ‘연애당’이라 부르며 좋지 않게 바라보던 시절도 있었지만, 내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며, 관찰한 바로는 ‘교회 오빠’들은 성능이 좋은 브레이크를 장착한 사람들입니다.

술과 담배를 하고, 일탈의 비행을 한다 해도 그들은 어둠의 자식과는 다른 ‘빛’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멈춰야 할 선이 있으며, 아무리 깊은 ‘사망의 골짜기를’ 헤매고 다닐지라도 자신이 돌아갈 집과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고삐 풀린 말이 잠시 집을 떠나 멀리, 멀리 제 맘대로 돌아다녀도 해가 기울면 제 집 근처를 기웃거리며 찾아오듯, 향기로운 풀에 이끌려 길을 잃은 양이 메에, 메에 주인을 찾으며 울듯, 스스로 타락하고 방종한다 해도 아주 멀리 가지 못하며, 낭떠러지 아래로 자신을 던지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의 성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를 스승으로 삼고 눈앞에서 온갖 이적을 보아온 베드로지만, 타고난 급하고 다혈질적인 성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스승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종 말고에게 대뜸 칼을 뽑아 귀를 댕강 자른 걸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18장 10절). 그러나 신은 사람의 행위보다 그 안의 '중심'을 본다고 합니다. ‘교회 오빠’들의 중심은 ‘빛’이니, 제아무리 교회를 떠나 ‘세상 연락을’ 열나게 즐기고 멀리멀리 헤매고 다녀도 다시 돌아올 수 없을 만큼은 망가지지 않으며, 무엇보다 체념하거나 자신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점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이상 52년 동안 ‘음지에서’ 관찰해 온 교회 오빠들에 대한 현장보고서를 제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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