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하기

마을 주민에서 마을 시민으로

마을 주민에서 마을 시민으로

1993, 04, 05 ~ 2023, 04, 05 ~

 

지나간 미래 1 [흰白 구름雲]

글 / 이현배


 

책을 옮겨야 한다, 옮겨야 한다고 한 게 몇 달째다. 그 양이 적지 않다. 그리고 옮길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도 이제는 옮겨야 해서 상장의 흙먼지를 씻고 있는데 집배원 아저씨 오토바이가 위로 올라오고 있다. 오토바이가 위로 올라온다는 것은 등기 소포가 있다는 것이다. 보통은 대문간 느티나무에 대충 매달린 우편함에 넣어두니 말이다. 고무장갑을 벗고 맞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이다. 부희령 작가의 ‘구름해석전문가’라는 소설책이다. ‘아 그 작가분의 이름이 부희령이구나!’ 지난 정월대보름에 유감독께서 2박3일 일정으로 왔는데 여성 두 분이 동행했다. 예정은 부안 석포리 당산제를 촬영하기로 하였고, 민속학 김선생네도 동행하자고 했지만 나는 거창 동호의 종가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굿의 다양성 때문에 중평마을을 촬영하기로 하여 진안으로 온 거였다. 중평마을의 시암굿과 다리굿이 여섯 시부터라 그 짬에 옹기점엘 오신 거였고 유감독님께서 ‘커피 한 잔 주세요’ 한다. 마침 만든 한입 초콜릿(프라린)이 있어 커피를 내려 드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동행한 분 중에 한 분이 게르 모양 포장의 초콜릿을 내어주는데 몽골 분이었다. 오래전에 마이산 아래 옹기점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옹기점이 이 옹기점이다. 그러니까 이 십여 년 전에 몽골에 김칫독을 이 십여 개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통역으로 온 거였다. 그때는 유학생 신분이었고 지금은 단국대학교 몽골어 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거기까지고 곧 굿이 시작될 터라 중평마을로 가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중평마을로 전화를 드렸더니 고사굿과 마당밟이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거창엘 갈 수 없었다. 몽골로 간 김칫독들이 궁금했다. 김칫독들이 몽골로 가게 된 것은 내 기억에 중국령의 몽골인들이 각종 현대병에 시달리게 되어 한국식 발효식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몽골인들이 중국당국으로부터 제공받는 현대식 집과 복지혜택으로 활동성이 없어져 각종 현대병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몽골인 기업인이 한국의 김치 문화를 자민족의 식생활 개선에 적용하고자 하는 거였다. 그러잖아도 시장의 일반적인 항아리보다 비싼 재래가마에 구운 옹기를, 많은 물류비용을 감수하며 실어 간 거였다.

그래 거창 동호의 종손에게 양해를 구하고 유감독님과 일행을 망우리굿까지 틈이 생겨 옹기점에서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마을굿 이야기가 우선이어서 김칫독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래 명함을 건네며 명함을 받고 싶다고 하였다. 유감독께서 00작가에게도 명함을 드리라 하여 명함을 건네며 받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제가 이 주소로 책을 한 권 보내드릴게요.”라고 한다.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물었더니 소설과 수필을 쓴다면서 “소설책을 보내드릴까요? 수필집을 보내드릴까요?” 한다. 나는 “소설책요”라고 했다. 순간이었다. 그것은 퀴즈대회에서 문제가 출제 중인데도 답을 알 만한, 그래 온몸으로 버저를 누를 때처럼 다급하게 답했을 것이다. 나한테 소설과 에세이의 관계가 그렇다. 물론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렇게 받은 ‘구름해석전문가’는 여섯 편의 소설을 묶은 소설집이었다. 첫 장에 저자 싸인 “이현배, 최봉희 선생님께 부희령 드림 2024, 2, 27”이 있었다. ‘작가분의 이름이 부희령이구나!’ 하고 점심을 먹으며 ‘도대체 구름해석전문가가 뭘까?’ 하며 두 번째 꼭지, ‘구름해석전문가’를 보게 되었다. 그렇게 거의 읽어 갈 때 흰 구름 작은 도서관 관장께 전화가 왔다. 작은 도서관에 리모델링 공사가 들어왔는데 의견을 묻는 거였다. 통화가 길어지게 되어 차라리 도서관에서 담당과 미팅을 갖자는 거였다. 순간 망설여졌다. 내 스스로 작정한 것이 있어서다. 22년 지방선거와 23년 조합장 선거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지역 일에 적어도 1970년대생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1960년대생인 나부터 입을 닥쳐야겠다고 여겨서다.

좋은 말로 입은 닥치고 지갑은 열라는 것인데 지갑이랄 것이 없어 곤혹스럽다. 그래서 대신 도서관엘 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2024년 4월, 200호 기념 ‘월간백운’ 기획안을 받았다. 기획안의 네 번째 큰 주제인 ‘백운의 미래를 생각하다’ 아래 작은 주제로 ‘지역 소식지 월간 <백운>의 가치’-손주화, 유정규, 정병귀, 이현배라 쓰여 있었다.


구름해석전문가, 흰구름작은도서관, 일상문화공간화-사랑방, 월간백운..... 다 ‘지나간 미래’로 읽혔다. 2006년의 지붕 없는 전원박물관도, 2012년의 백운 백년도, 2019년의 ‘몫 없는 자들을 위한 공유사회의 꿈’도 지나간 미래다.

지나간 미래, 모두가 언어가 될 수는 없지만 월간백운의 200호가 언어로 생성되고 언어로 접근되었기에 이 삶 또한 1993년 4월 5일에서 2023년 4월 5일까지 ’마을 주민‘으로, 그리고 2023년 4월 5일 이후를 ’마을 시민‘으로 미래의 입말이 되어 다시 오늘 지나가기에 앞으로 그 이야기를 오늘처럼 글말로 하기로 한다. / 옹기장이 이현배(백운면 정송마을)


좌측부터 월간백운 김유애 편집간사, 최영윤 편집위원장, 서춘석 편집위원 / 사진출처 시사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