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 / 발달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가기
내 앞만 보고 살기에도 벅찬 우리는 남의 사정을 잘 모른다. 장애가 그렇다. 평생 장애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장애인과 맞닥뜨렸을 때 이쪽도 저쪽도 같이 당황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알고 나면 별것 아닌 걸 피차 사정을 잘 몰라 겪는 일일 게다.
월간광장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비장애인과 우리 사회가 장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니까.
심한 발달장애인 진태씨의 어머니 달팽이님1)이 아들과 살면서 겪은 소소한 일상을 담은 글을 싣는다. 달팽이님은 자신의 글이 다른 이들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세상살이에 불편을 겪는 아들의 어려움을 이웃들이 이해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달팽이님의 글이 읽다 보면 꽤 재미있다. / 월간광장 편집부
글과 사진 / 달팽이
토닥토닥
토요일 이른 아침이다. 잠자리에서 벗어나려고 애써 눈알을 굴려 보지만 착 들러붙은 눈꺼풀은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없다. 요즘 들어 잠을 자도 찌뿌둥한 게 몸이 젖은 솜이불 같다. 갱년기려니 생각하며 게으름을 피워 볼 요량으로 침대를 벗어나자마자 다시 소파에 들러붙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잠시 후 진태의 방문이 벌컥 열리고 “안녕히 주무셨어요?” 우렁찬 인사말이 귀를 파고들었다. 이럴 땐 모르쇠가 제일이다. 고개를 처박고 애써 아는 척하지 않는 내게 녀석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또다시 허리 숙여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사를 건네며 나를 찬찬히 훑어보는 듯했다.
참아야 했다. 그러나 다짐과 달리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한다. 이유는 밤새도록 열리지 않았던 진태의 입 냄새 때문이다. 가히 방귀 테러에 버금가는 냄새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목을 홱 돌리고 꼭 끌어 않으며 “그려, 진태도 잘 잤냐? 근디 엄마가 정말 피곤해서 그러는데 저쪽 가서 놀면 안 되까?”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했건만 녀석은 단호했다.
“아침밥 주세요. 토요일이니까! 토요일은 대청소하는 날. 분리수거도 하고 쓸고 닦고 해요.” 엄마의 사정은 아랑곳 없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녀석을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이래 봐도 오십여 년을 버티는 힘 하나로 살아왔다. 무정한 새끼, 어디 한번 해보라지. 엿가락 늘어지듯 드러누워 버티는 나를 보며 진태는 방법을 달리했는지 슬그머니 내 머리맡에 와서 앉았다. 내 머리에 얼굴을 갖다 댄 진태가 코를 벌름거리며 킁킁거린다.
“음 머리 냄새!” 하면서 진태가 머리를 쓰다듬는데 뭐지 싶었다. “헐! 엄마 머리 감았거든.” 하면서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니 “좋아요. 머리 냄새 좋아요” 하면서 자기 무릎을 내어 준다.
이런 젠장, 이쯤 되면 무너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미 몽글몽글해진 내 마음을 알아차린 녀석은 재빨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내 등을 토닥이며 이렇게 말했다.
“토닥토닥”
‘아! 내 아들 진태가 이제 공감이라는 걸 하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감동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
“음! 고마워, 진태야. 그럼 엄마 쉬어도 되는 거지?” 묻자 상냥하게 웃으며 “엄마 일어나요. 토요일이니까 청소도 하고 먼지도 털고 분리수거도 해요.” 그럼 그렇지. 녀석은 나를 사용하는데 고수였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닫고 나자 더는 뭉개고 있을 재간이 없었다.
“알았어. 그럼 밥부터 먹고 하자.” 어기적어기적 밥상을 차리고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진태가 명랑하게 한마디를 더 던졌다.
“진태는 후라이, 계란 후라이도 좋아요.” 결국, 진태는 모든 걸 이뤘다.
밥을 먹고 우리는 온 집안을 쓸고 닦고 대청소를 했다. 아이고 삭신이야! 니가 갱년기를 알어?
진태는 분명 내일은 드라이브를 가자고 할 거다.

다행이다
진태가 일과 중 절대 빠트리지 않는 게 있다. 바로 냉장고 뒤지기다. 냉장고 속 식재료를 살피고 다음 날 저녁 먹고 싶은 것을 정해주는 일에 온 정성을 쏟는다. 엊저녁에는 내가 몰래 숨겨놓은 돼지고기를 찾아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 내일은 수육 먹는 날! 좋아요. 수육 먹으니까 좋아요.” 벌써 기분이 좋은지 육중한 몸으로 사뿐사뿐 뛰다가 발가락을 문턱에 찧은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얼마나 아플지 충분히 짐작했지만, 일부러 아는 척하지 않았다. 진태 얼굴은 금세 일그러졌고 아프단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끙끙대며 한참을 서 있었다. 진짜 엄청 아파 보였다. 잠시 후 절뚝거리며 다가와 내 눈을 보면서 “엄마, 약 발라줘. 아파. 피 났어.”라며 울먹였다. “그래? 아프지? 어디야?” 호들갑스럽게 내가 묻자 “여기 아파. 여기 피 났어. 밴드 붙여요.”라면서 새끼발가락을 들이밀었다.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진태에겐 미안하지만 내심으론 반가웠다.
자폐성 장애에서 제일 어려운 점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진태도 그랬다. 어릴 적, 장난감 자동차를 뒤집어 놓고 끝도 없이 바퀴를 돌리면서 빠르게 돌아가는 바퀴에 집중했다. 그럴 때면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청년이 되었어도 부딪혀 상처가 나고 멍이 들고 피가 나도 좀처럼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러던 녀석이 이제는 아프다고 피가 난다고 약을 발라 달라며 엄마에게 상처를 들이민다.
내 새끼가 말한다. 아프다고 나 좀 봐달라고 한다. 다행이다.

1) 달팽이님은 2017년에 아들과 함께 울산에서 진안군 동향면으로 귀촌했다. 지금은 주천면의 노인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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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가기(1)
사람이니까 몰라서 놓치고 실수할 수 있다
생활글 / 발달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가기
내 앞만 보고 살기에도 벅찬 우리는 남의 사정을 잘 모른다. 장애가 그렇다. 평생 장애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장애인과 맞닥뜨렸을 때 이쪽도 저쪽도 같이 당황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알고 나면 별것 아닌 걸 피차 사정을 잘 몰라 겪는 일일 게다.
월간광장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비장애인과 우리 사회가 장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니까.
심한 발달장애인 진태씨의 어머니 달팽이님1)이 아들과 살면서 겪은 소소한 일상을 담은 글을 싣는다. 달팽이님은 자신의 글이 다른 이들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세상살이에 불편을 겪는 아들의 어려움을 이웃들이 이해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달팽이님의 글이 읽다 보면 꽤 재미있다. / 월간광장 편집부
글과 사진 / 달팽이
토닥토닥
토요일 이른 아침이다. 잠자리에서 벗어나려고 애써 눈알을 굴려 보지만 착 들러붙은 눈꺼풀은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없다. 요즘 들어 잠을 자도 찌뿌둥한 게 몸이 젖은 솜이불 같다. 갱년기려니 생각하며 게으름을 피워 볼 요량으로 침대를 벗어나자마자 다시 소파에 들러붙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잠시 후 진태의 방문이 벌컥 열리고 “안녕히 주무셨어요?” 우렁찬 인사말이 귀를 파고들었다. 이럴 땐 모르쇠가 제일이다. 고개를 처박고 애써 아는 척하지 않는 내게 녀석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또다시 허리 숙여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사를 건네며 나를 찬찬히 훑어보는 듯했다.
참아야 했다. 그러나 다짐과 달리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한다. 이유는 밤새도록 열리지 않았던 진태의 입 냄새 때문이다. 가히 방귀 테러에 버금가는 냄새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목을 홱 돌리고 꼭 끌어 않으며 “그려, 진태도 잘 잤냐? 근디 엄마가 정말 피곤해서 그러는데 저쪽 가서 놀면 안 되까?”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했건만 녀석은 단호했다.
“아침밥 주세요. 토요일이니까! 토요일은 대청소하는 날. 분리수거도 하고 쓸고 닦고 해요.” 엄마의 사정은 아랑곳 없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녀석을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이래 봐도 오십여 년을 버티는 힘 하나로 살아왔다. 무정한 새끼, 어디 한번 해보라지. 엿가락 늘어지듯 드러누워 버티는 나를 보며 진태는 방법을 달리했는지 슬그머니 내 머리맡에 와서 앉았다. 내 머리에 얼굴을 갖다 댄 진태가 코를 벌름거리며 킁킁거린다.
“음 머리 냄새!” 하면서 진태가 머리를 쓰다듬는데 뭐지 싶었다. “헐! 엄마 머리 감았거든.” 하면서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니 “좋아요. 머리 냄새 좋아요” 하면서 자기 무릎을 내어 준다.
이런 젠장, 이쯤 되면 무너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미 몽글몽글해진 내 마음을 알아차린 녀석은 재빨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내 등을 토닥이며 이렇게 말했다.
“토닥토닥”
‘아! 내 아들 진태가 이제 공감이라는 걸 하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감동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
“음! 고마워, 진태야. 그럼 엄마 쉬어도 되는 거지?” 묻자 상냥하게 웃으며 “엄마 일어나요. 토요일이니까 청소도 하고 먼지도 털고 분리수거도 해요.” 그럼 그렇지. 녀석은 나를 사용하는데 고수였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닫고 나자 더는 뭉개고 있을 재간이 없었다.
“알았어. 그럼 밥부터 먹고 하자.” 어기적어기적 밥상을 차리고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진태가 명랑하게 한마디를 더 던졌다.
“진태는 후라이, 계란 후라이도 좋아요.” 결국, 진태는 모든 걸 이뤘다.
밥을 먹고 우리는 온 집안을 쓸고 닦고 대청소를 했다. 아이고 삭신이야! 니가 갱년기를 알어?
진태는 분명 내일은 드라이브를 가자고 할 거다.
다행이다
진태가 일과 중 절대 빠트리지 않는 게 있다. 바로 냉장고 뒤지기다. 냉장고 속 식재료를 살피고 다음 날 저녁 먹고 싶은 것을 정해주는 일에 온 정성을 쏟는다. 엊저녁에는 내가 몰래 숨겨놓은 돼지고기를 찾아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 내일은 수육 먹는 날! 좋아요. 수육 먹으니까 좋아요.” 벌써 기분이 좋은지 육중한 몸으로 사뿐사뿐 뛰다가 발가락을 문턱에 찧은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얼마나 아플지 충분히 짐작했지만, 일부러 아는 척하지 않았다. 진태 얼굴은 금세 일그러졌고 아프단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끙끙대며 한참을 서 있었다. 진짜 엄청 아파 보였다. 잠시 후 절뚝거리며 다가와 내 눈을 보면서 “엄마, 약 발라줘. 아파. 피 났어.”라며 울먹였다. “그래? 아프지? 어디야?” 호들갑스럽게 내가 묻자 “여기 아파. 여기 피 났어. 밴드 붙여요.”라면서 새끼발가락을 들이밀었다.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진태에겐 미안하지만 내심으론 반가웠다.
자폐성 장애에서 제일 어려운 점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진태도 그랬다. 어릴 적, 장난감 자동차를 뒤집어 놓고 끝도 없이 바퀴를 돌리면서 빠르게 돌아가는 바퀴에 집중했다. 그럴 때면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청년이 되었어도 부딪혀 상처가 나고 멍이 들고 피가 나도 좀처럼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러던 녀석이 이제는 아프다고 피가 난다고 약을 발라 달라며 엄마에게 상처를 들이민다.
내 새끼가 말한다. 아프다고 나 좀 봐달라고 한다. 다행이다.
1) 달팽이님은 2017년에 아들과 함께 울산에서 진안군 동향면으로 귀촌했다. 지금은 주천면의 노인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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