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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이 빛나는 밤에] 앞으로나란히! 이시백 / 이야기 보부상

[썰이 빛나는 밤에] 앞으로나란히! 

 

이시백 / 이야기 보부상

 

줄서기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오그라들 만큼 쌀쌀한 3월 초에 줄의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라는 낯선 곳에 처음 가는 날, 태생적으로 숫기가 없고 낯가림이 심하던 내겐 고문이나 다름없었지요. 가슴에 손수건을 잘못하면 심장을 찌를 듯한 옷핀으로 매달고, 새로 사서 발을 깨무는 운동화와, 걸을 때마다 달그락거리며 쇠가죽 냄새를 풍기던 ‘란도셀’ 가방도 낯설기만 했지요. 

추운 운동장에 모여 가장 먼저 배운 것이 ‘앞으로나란히!’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줄서기는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거행되는 애국 조회로 이어졌지요. 전교생이 ‘오와 열’을 맞춰 부동자세로 서 있는 동안 교장선생은 학생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지루한 이야기를 장황스레 늘어놓았습니다.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고, 바꿔 말하고, 예를 들어 말하고, 요약하여 말하는 동안 지루함을 못 견딘 내 눈에 개미가 띄었습니다. 나는 지나가던 개미에게 침 맞추기를 하느라 줄에서 이 센티쯤 벗어났고, 선생님에게 걸려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령대 옆으로 끌려 나가 엎드려뻗쳐야 했지요.

 

학교를 졸업한다고 줄서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줄서기의 끝장 판이라 할 군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병장에 바둑알처럼 줄을 지어 서고, 밥 먹으러 갈 때도 줄을 맞춰 걸어가야 했지요. 그렇게 줄서기에 대해 조기교육과 심화학습에 집체훈련까지 마치고 나니 세상이 온통 줄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커피점에 비스듬히 앉은 청년을 보면, 슬며시 등을 떠밀어 ‘앞으로나란히’를 시켜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지요.

 

언젠가 어느 중학교에 강연을 요청받고 갔는데, 놀랍게도 손바닥만 한 강당에 전교생이 서 있는 것입니다. 그 앞에서 이야기하는 동안, 아이들은 몸을 비틀며 ‘스트레칭’을 하거나, 옆의 아이와 진지한 ‘분임 토의’를 했지요. 그때, 뒷짐을 지고 학생들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던 선생님이 줄을 벗어난 아이의 등을 손으로 비틀었습니다. 차마 내가 보는 앞에서 들고 있던 드럼 채로 때릴 수가 없으니, 조용하고 평화로운 필살기인 ‘꼬집기’를 시전한 듯합니다. 등가죽을 꼬집힌 아이는 고통을 못 이겨 얼굴을 찡그리며 산낙지처럼 온몸을 비틀었습니다. 요즘도 한류를 이끄는 아이돌들의 칼군무를 보면, 과연 줄의 민족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줄에서 이 센티 벗어났다고 지구의 평화와 인류의 발전에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줄서기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줄을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정치꾼들의 행보가 화려합니다. 공천에 목을 건 이들은 자신이 붙든 줄이 썩은 동아줄인지, 튼튼한 밧줄인지 가늠하기 바쁩니다. 그야말로 ‘줄을 잘 서야 한다’라는 말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사회라 하겠습니다. 

 

ps : 스스로 이야기 보부상을 자처하는 이시백님의 페이스북에 가면 더 많은 좋은 글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