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하기

최창남의 긴 생각, 짧은 글

최창남의 긴 생각, 짧은 글

 

생각 하나

 

살아가면서 상처받고 눈물 흘리며 고통을 겪는 것은 내게 고통을 준 어떤 사람, 누군가 때문이 아니다. 사랑 때문이다. 사랑을 품고 있는 나 자신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어떤 사람을 사랑했었고, 또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상처받을 일이 없다. 사랑하기에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것이다. 먼저 사랑하고 더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사랑하고 더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상처받고 더 깊은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다. 그 사랑이 수많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능력 중 하나이다. 이런 사랑이 억울해서 하기 싫다면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사랑을 하지 않으면 나 자신도, 내 삶도 사랑의 능력을 입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겨우내 얼어있던 땅에 풀이 돋고

수국 가지에 새잎이 움트는 것을 보니 

사랑이 땅속에 있구나

겨우내 눈 내리더니

연일 봄비 내리는 것을 보니

사랑이 하늘에도 있는 모양이다

마당 한 켠에 복수초 피어나고

마가렛도, 낮달맞이도 피어날 테니 

사랑은 꽃 안에도 있구나

눈길 닿는 곳마다 사랑이 있으니 

상처받고 눈물 흘리고 고통받았다고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며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고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매 순간 느끼고 있는 

바람과 같은

낮달맞이의 꽃말은 ‘무언의 사랑’이다. 낮달맞이꽃이 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 둘

 

삶은 자기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지나며 품게 된 비밀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삶의 굽이굽이를 이리저리 건넌 후에야 조금씩 드러낼 뿐입니다. 그것도 대개 알아차리기 쉽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생존만으로도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삶은 생존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품고 지켜야 하는 소중한 가치들, 사랑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것들이 함께 뒤섞여 있습니다. 이런 정도만으로도 삶은 이미 어려운데, 수많은 삶이 함께 뒤엉켜 살아가고 있어 더욱 어렵습니다. 저마다 소중한 가치, 사랑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것들을 품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삶이 눈앞에 동시에 펼쳐져 있어 어떤 삶을 선택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더욱 어렵습니다. 

 

분별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그 수많은 삶은 모두 저마다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진실한 삶들입니다. 그러니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한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진실한 삶들은 모두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의 삶에서 진실한 것이지 내 삶에서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들의 삶은 진실하지만 동시에 진실하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진실한 그들의 삶은 그들에게 있어서만 진실한 삶일 뿐입니다. 내 삶에 있어서는 진실한 삶이 아닙니다. 내 삶에서의 진실한 삶은 내가 만들어 가는 삶 하나뿐입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내 삶입니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삶의 전범을 알려주는 수많은 이야기가 우리 삶에는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수많은 가치 지향적인 삶을 가르치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요구하는 책들도 많습니다. 신을 위해 사는 삶, 가족들을 위해 사는 삶,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삶, 정의를 위해 사는 삶, 돈과 명예를 위해 사는 삶 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모든 삶은 진실하고 훌륭합니다.

 

그 모든 삶이 진실하고 훌륭한 삶이 되려면,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고, 우리 자신의 삶으로 살아갈 때만 진실하고 훌륭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 자신만의 삶이 됩니다. 누군가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삶이 아니라. 마치 수백 가닥의 길을 품고 있는 커다란 산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수십, 수백의 크고 작은 산과 봉우리를 품고 있는 산줄기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길이 있습니다. 삶이 있습니다. 그 삶을 찾아 살아갈 때만 우리의 삶은 비로소 평범해집니다. 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룬 채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처럼, 우리도 자연의 일부, 모두의 하나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기로부터, 이것이 삶의 시작이며, 모든 것의 전부입니다. 내가 나로 태어난 이유입니다.